항목 ID | GC07100675 |
---|---|
한자 | 蔣英實 |
영어공식명칭 | Jang Yeongsil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아산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경윤 |
출생 시기/일시 | 1390년[추정] - 장영실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421년 - 장영실 윤사웅, 최천구 등과 함께 명나라에 파견 |
활동 시기/일시 | 1423년 - 장영실 상의원 별좌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32년 - 장영실 혼천의 제작 |
활동 시기/일시 | 1433년 - 장영실 자격루 제작 |
활동 시기/일시 | 1433년 - 장영실 호군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34년 - 장영실 보루각루 제작 및 갑인자 주조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438년 - 장영실 흠경각루 제작 |
활동 시기/일시 | 1438년 - 장영실 대호군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41년 - 장영실 측우기와 수표 발명 |
몰년 시기/일시 | 1450년[추정] - 장영실 사망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11년 7월 22일 - 아산장영실과학관 개관 |
묘소|단소 | 장영실 가묘 -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
성격 | 과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아산 |
대표 관직 | 대호군 |
[정의]
충청남도 아산을 본관으로 하는 조선 전기 때의 과학자.
[개설]
장영실(蔣英實)[1390?~1450?, 생몰년 미상]은 노비 출신으로 미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조선 전기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와 해시계를 제작하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이다.
[가계]
장영실의 출생과 내력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세종실록』에는 "아버지가 중국 원나라 소항주(蘇杭州) 사람이고, 어머니는 기생[官妓]이며, 장영실은 동래현(東萊縣)[현재 부산광역시]의 관노(官奴)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태종과 세종 대의 인물인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아산장씨족보』에는 장영실의 아버지가 고려 말 정3품 전서(典書)를 지낸 장성휘(蔣成暉)로 되어 있다.
[활동 사항]
장영실은 본래 동래현의 관노이나 태종이 과학에 대한 훌륭한 재주를 인정하여 발탁되었다. 세종은 실용주의자로서 장영실의 적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부왕의 뒤를 이어 중용하였다. 이처럼 장영실은 태종과 세종의 총애를 받아 노비 신분을 벗어나 관인(官人)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세종의 특별한 배려로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에 임명된 이후 무관직인 정5품 사직(司直)이 되었고, 1433년(세종 15) 자격루 제작에 성공하여 정4품 호군(護軍), 1438년(세종 20) 종3품 대호군(大護軍)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세종이 장영실에게 호군의 관직을 더해 줄 것을 의논하게 하는데, 그 과정에서 관노가 관인이 될 수 없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에 보인다. 이조판서 허조(許稠)는 "기생의 소생을 상의원에 임용할 수 없다."고 하고, 병조판서 조말생(趙末生)은 "이런 무리는 상의원에 더욱 적합하다."고 하였다. 세종은 또 다른 대신들과 의논하는 과정에서 장영실의 사람됨이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정교하고 똑똑하기가 보통에 뛰어나 강무(講武)[임금이 신하와 백성들을 모아 일정한 곳에서 함께 사냥하며 무예를 닦던 행사]할 때에는 내시를 대신해 명령을 전하기까지 하였으며, 장영실이 아니면 자격궁루(自擊宮漏)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더해 주었다.
1421년(세종 4) 세종은 장영실을 윤사웅(尹士雄), 최천구(崔天衢) 등과 함께 중국에 보내어 천문기기의 모양을 배워 오도록 하였다. 이때 장영실은 과학에 대한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세종의 명에 따라 천문 기구를 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인 자격루[일명 보루각루(報漏閣漏), 1434년(세종 16) 경복궁 경회루 남쪽의 보루각에 설치]와 옥루(玉漏)[일명 흠경각루(欽敬閣漏), 1438년(세종 20) 강녕전 옆 흠경각에 설치]를 만들어 세종으로부터 총애를 받았다.
1434년(세종 16)에는 구리로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甲寅字)의 주조에 참여하였다. 조선 초기 이미 존재하였던 금속활자를 보완하여 새롭게 제작한 것이다. 1441년(세종 23)에는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測雨器)와 수표(水標)를 발명하였다. 또한 천체 관측기구인 대간의(大簡儀), 소천의(小踐儀)를 비롯하여 태양의 고도와 출몰을 측정하는 규표(圭表)를 제작하여 경복궁 간의대(簡儀臺)[관천대(觀天臺)]를 왕립 천문대로 만들었다.
[묘소]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아산장씨 시조인 장서(蔣婿)의 묘 아래에 장영실의 가묘가 있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아산시 배미동에는 장영실을 아산시의 브랜드 및 대한민국 과학기술교육의 아이콘을 정립하기 위하여 2011년 7월 22일 아산장영실과학관을 설립하여 운영 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