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017
한자 改新敎
영어공식명칭 Protestantism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현

[정의]

충청남도 보령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설]

개신교는 16세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및 동방정교회와 대립하는 과정에서 성립한 종교이다. 전통적인 로마가톨릭교회[천주교]의 교리와 제도에 항의한다[Protest]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 말한 데서 연유한다. 개신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하는 구세주로 여기는 것을 신앙의 근본 교의로 삼는다. 가톨릭과 다르게 성사(聖事)는 성만찬과 세례 두 가지로 줄이고, 종전의 교회법을 폐기하여 교회를 신도 중심의 자발적이고 자치적인 공동체의 모임으로 구성한다. 또한, 만인사제의 원리에 입각하여 목사와 평신도 사이에 어떠한 계층의 차이를 두지 않고, 자급의 원리에 서서 감독제, 장로제, 회중제 등으로 운영한다.

[보령 지역의 개신교 전래]

우리나라의 개신교 선교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미국에서 개신교 선교에 자유를 요구하고 합의하게 되면서, 포교 초창기에 박해에 시달렸던 천주교와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개신교 선교가 가능하였다. 하지만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개신교 전파는 이미 19세기 초반 서양 열강들의 선박인 이양선들이 마량진과 고대도를 다녀가며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충청남도 보령시 남포면에 위치한 마량진은 당시 충청수영에 속한 수군 진영으로 1816년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조선의 서해안 일대를 탐험하다가 상륙하게 되었다. 이때 마량진첨사 조대복(趙大福)[1755~?]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1767~?]이 차례로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문정(問情)하였고 선실 서가에 가득한 서적과 천구의(天球儀) 등에 호기심을 보여 알세스트호 함장 머레이 맥스웰(Captain Sir. Murray Maxwell)[1775~1831]이 책을 주었는데 그 책이 성경이었다. 이러한 사건으로 마량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이 전래된 곳이 되었다.

[보령 지역의 개신교 전파]

영국 함선 알세스트호와 리라호가 마량진을 다녀간 지 16년 후인 1832년 7월 동인도회사의 용선 로드앰허스트(Lord Amhest)가 중국 연안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목적으로 항해하던 중 황해도 몽금포를 거쳐 충청도 홍주목에 속했던 고대도에 정박하였다. 이때 로드앰허스트에 승선했던 의사 겸 통역을 맡은 프로이센 출신의 유대계 폴란드인 장로교 목사 칼 프레드릭 어거스트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1803~1851]가 고대도에 들어와 약 한 달간 머무르면서 포도 재배법, 포도주 제조법, 감자 재배 방법을 전파하였고, 조선 국왕에게 헌상할 서신과 한문 성경 등을 주었다. 또한, 귀츨라프는 당시 홍주목사인 이민회(李敏會)[1766~?]에게 주기도문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보령 백성들에게 알려 주도록 하였는데, 한문 성경과 주기도문을 알려 주었다는 사실을 통해 기독교가 보령 지역에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보령 지역의 개신교 특징]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개신교 선교 과정에서 특징적인 것은 선교 초창기 구세군의 활동이 활발하였다는 사실이다. 초기 개신교 선교를 이끌었던 장로교와 감리교는 충청도 지역 선교에 소극적이었던 반면 뒤늦게 활동하기 시작한 구세군은 충청도에서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전개하였다. 구세군이 서울을 벗어나 처음으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펼친 지역이 충청도였고, 그중에서도 보령 지역[당시 홍주, 오천 지역]은 구세군 선교의 출발지였다.

『한국구세군연혁집』에 의하면, 구세군은 1908년 처음 서울에서 세 곳의 영문(營門)을 개설한 이후 바로 충청도로 내려와 1909년 2월 삼룡리영[부여], 4월 진죽 평촌지영[보령 청소면], 5월 오천영[보령 오천면], 7월 태안영[태안], 8월 유구영[공주]을 설립하였으며, 1910년에는 은포영문[보령 주교면]을 설립하였다. 현재 보령시에는 일곱 곳의 구세군 영문이 있는데 그중 세 곳의 역사가 110년이 넘는다.

[보령 지역의 개신교 교회 설립]

충청남도 보령 지역의 첫 개신교회는 1904~1905년경 시작된 감리교단의 궁촌교회와 1906년 설립된 장로교단의 평라리교회[자라실교회]이다. 1912년 10월 30일자 『그리스도회보』 기사를 근거로 궁촌교회의 설립 시기를 1904~1905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교회를 보령 지역의 첫 감리교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궁촌교회는 이후 보령 지역 유일한 감리교회로 성장하였고, 1923년 교회를 대천읍내 중심지로 옮기면서 교회 이름도 대천교회로 개칭하였다. 광복 이후 다시 대천제일교회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8년에 발행된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상)』 에는 보령 지역에 평라리교회[1906]와 도화담교회[1908]가 설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평라리교회가 설립될 당시 행정구역은 남포군이었다. 당시 남포 자라실마을의 염동환이라는 청년이 서천 화산교회에서 복음을 듣고 고향 마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평라리교회의 시작이다. 이후 평라리교회를 모체로 남포 지역에 8개 교회가 설립되었고, 1950년대 중반 장로교단 분열 과정에서 평라제일교회[기장]와 평라제이교회[예장]로 나뉘었다. 1998년 보령댐 준공으로 마을 대부분이 수몰됨에 따라 평라제일교회는 주교면으로 이전하여 대성교회가 되었고, 평라제이교회는 늑전리로 이전하여 미산중앙교회가 되었다. 두번째로 설립된 도화담교회는 1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을을 지키고 있다.

[보령 지역의 개신교 교회 현황]

현재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는 총 33개의 감리교 교회, 111개의 장로교 교회가 있다. 이 외에도 성결교, 침례교 등 여러 종파가 있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대천제일교회(www.jeil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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