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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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山島 鎭村 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진촌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효경 |
의례 장소 | 상당[말당]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진촌 당산 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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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마을신앙 |
의례 시기/일시 | 음력 정월 초순 |
신당/신체 | 당집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진촌에서 음력 정월 초순에 길일을 택해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 지냈던 공동 제사.
[신당/신체의 형태]
원산도 진촌의 당산 정상부에 당집이 있었다. 기와를 얹은 단칸집으로, ‘상당’ 혹은 ‘말당’이라 불렀다. 말[馬] 형상의 토기 여러 개가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진촌에 조선 시대의 국영 목장이 있었음을 감안해 목장과 관련된 사당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전설에 따르면 말이 도적을 쫓다가 마을 앞 황소바위에서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며, 이후 말의 오른쪽 뒷다리를 명주실로 묶어 당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다리가 부러진 말을 마을 당집에 봉안한 사례가 많은데, 국영 목장과 무관한 마을이 다수이다. 말은 마을을 수호하는 당신(堂神)으로 봉안되었는데, 말당의 ‘말’이 목장과 관련되었는지에 대한 여부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1974년 박계홍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집 우측벽 상단에 ‘원산신당중수기(元山神堂重修記)’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었다. 지금은 현판이 남아 있지 않지만, 기록에 따르면 당집은 1906년(고종 43)에 중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중수하기 이전에 초건(初建)은 중수보다 이른 시기로 추정되므로 오랜 연원을 지녔다고 보여진다.
[절차]
신당의 기록 이외에 원산도 진촌 당제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여타의 도서지역 당제와 유사한 절차로 지냈을 것으로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