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13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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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孝子 金啟煥 旌閭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넙티로 391-29[성연리 23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윤현 |
건립 시기/일시 | 1830년 - 효자 김계환 정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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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효자 김계환 정려 -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넙티로 391-29[성연리 238] |
성격 | 정려 |
양식 | 맞배지붕|겹처마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김계환의 정려.
[개설]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에 있는 정려(旌閭)로 조선 후기 김계환(金啟煥)[1729~1789]의 효행을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김계환의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우정(憂亭) 김극성(金克成)[1474~1540]의 8세손이다. 자는 사윤(士潤), 호는 오음(烏隱)으로 김현경(金顯慶)[?~?]의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6세에 당시(唐詩)를 배울 정도로 영재였다. 1783년에 생원시에 입격하였으나, 평생을 학문과 부모 봉양에만 전념하였다.
김계환은 효성이 지극하여 빙중(氷中)에 고기를 얻어 부모를 봉양하였고, 삼복더위에 꿩이 마당으로 떨어지는 일 등이 생겨 그 고기로 부모를 봉양하였다.
김계환의 효행은 추후 조정에 알려져, 1830년 명정(銘旌)[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을 하사받고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추증되었다. 이러한 김계환의 행적은 성당(性堂) 정혁신(鄭赫臣)[1719~1793]의 『성당집(性堂集)』에 수록되어 있다.
[위치]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성연리 새재마을 입구 좌측에 있는 산의 동향 사면에 있다.
[형태]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 위에 시멘트로 기단을 설치하였고, 시멘트로 만든 팔각의 고주(高柱)를 올렸다. 정면은 홍살로 보호 시설을 하였으며, 건물의 양식은 맞배지붕의 겹처마 양식이다.
[현황]
6세 손부 백천조의 정려와 함께 있다.
[의의와 평가]
보령 지역 광산 김씨 판도판서공파 관련 자료이며, 조선 후기의 보령 지역 향토사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