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도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000368
한자 邊山盜賊
영어공식명칭 Byeonsan Rappare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전라북도 부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선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건

[정의]

조선 후기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민 집단.

[개설]

변산 도적 은 조선 후기에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유민(流民) 집단으로 ‘변산적(邊山賊)’으로도 불렸다. 1728년(영조 4)에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일어난 무신란(戊申亂)에 사족(士族)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참가했는데, 부안 지역의 변산적(邊山賊)도 가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배경]

17세기~18세기에 발생한 천재지변(天災地變)으로 전염병의 유행과 함께 민심(民心)이 흉흉한 상황에서 양역(良役)의 폐단으로 인해 유민과 도적떼가 증가했고, 부안 지역에서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물산이 풍부한 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경과]

영조(英祖)의 즉위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한 소론(少論) 준론(峻論)이 소외되었던 남인(南人)을 포섭해 ‘경종(景宗) 독살설’을 명분으로 영조의 폐위 및 밀풍군(密豐君)의 왕위 추대를 모의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1728년(영조 4) 3월 15일 호서 세력 이인좌(李麟佐)가 거병했고, 3월 20일 영남 세력이 안의(安義)와 거창(居昌)에서 거병했으며, 같은 날 호남 세력도 태인(泰仁)에서 거병하였다. 이른바 무신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인좌가 청주성을 점령하자 전라도 태인현(泰仁縣)의 박필현을 중심으로 호남 세력도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부안에서는 사족 고응량·성득하[정세윤 사촌]·고효점·성상하, 진사 김수종(金守宗)·박창한·김창수, 파총 임진량 등 10명이 호응하였다. 무신란을 일으킨 세력은 부안과 변산을 배경으로 활동한 명화적(明火賊)을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당시 태인·부안·변산 지역에서 활동하던 명화적은 약 400~500여 명으로 추산되며 ‘녹림당’이라고도 불렀다. 이인좌의 공초(供招)에서는 ‘호남의 변산적 200명’도 반란군으로 거론되었고, 당시 부안의 부호였던 김수종과 관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

무신란 이전에도 전라북도 부안의 변산과 전라남도 영암의 월출산(月出山) 등 호남 지역에서 유민의 무리가 횡행하였다. 무신란의 주모자를 추국(推鞠)하는 과정에서 20년 전부터 활동했다는 진술이 나오는 등 무신란 이전 전라도 지역에서 발생한 방화, 흉서 등의 사건에 명화적이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신란이 권력에서 소외된 사족이 주도한 것이었기 때문에, 변산적, 명화적 등의 하층민이 독자적인 세력으로 변혁에 적극적으로는 참여하지 못하게 되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1728년에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서 일어난 무신란에 사족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참가했고, 변산을 배경으로 활동한 ‘변산적’도 가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변산적이 단순한 ‘도적(盜賊)’ 또는 ‘역적(逆賊)’이었던지를 판단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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