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001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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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政丞-寃鬼傳說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
시대 | 시대 미상 |
집필자 | 김선아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5년 - 「홍정승 딸의 원귀 전설」 『국립공원 문화자원 설화 자료집』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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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지명 | 노적동 -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
성격 | 설화|원귀담 |
주요 등장 인물 | 홍정승|윤학병|홍주미|여관 주인 |
모티프 유형 | 신랑감 고르기|원귀 |
[정의]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노적동에서 홍 정승 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홍정승 딸의 원귀 전설」은 신랑감 고르기에 실패한 홍주미가 원귀가 되어 자신의 청혼을 거절한 윤학병의 고향에 3년 동안 가뭄이 들게 했고, 그의 수염에 오뉴월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리게 해서 앙갚음을 했다는 원귀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5년 국립공원관리공단 자원보전처에서 간행한 『국립공원 문화자원 설화 자료집』의 434~437쪽에 「홍 정승 딸의 원귀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내용]
조선 고종 때 파평 윤씨는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 노적동의 명문가였다. 윤씨 집안에는 윤학병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사나이답고 재주가 비상했으며 학문에도 힘써 사람들의 총애를 받았다. 고집이 너무 세서 자기주장을 잘 굽히지 않는 것이 한 가지 결점이었다.
스무 살이 가까워져서 과거를 보러 서울로 향해 가던 중 안양에 도착했다. 여정 상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안양역에서 하룻밤을 머물러야 했다. 윤학병도 안양에 도착하자 한 여관을 찾아 묵기를 청했는데 여관 주인이 거절하면서 “요즘 이 지방에 서울의 권세가이신 홍정승이 내려 와서 큰 집을 지어 놓고 여기를 지나는 길손을 모두 그 집에서 무료로 묵게 하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시오.”라고 했다. 윤학병은 이유 없이 남에게 신세지는 것은 싫으니까 그냥 여관에 묵게 해 달라고 했지만, 여관 주인은 그렇게 하면 자기도 위험해지고 윤학병도 위험해지니 그냥 그 집으로 가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고집이 센 윤학병이었지만 어쩔 수 없어서 홍정승의 집으로 갔다.
홍정승 집에 도착하니 십칠팔 세쯤 되어 보이는 예쁜 처녀가 나와서 윤학병을 살펴보았다. 그 처녀는 홍정승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홍주미였다. 홍주미는 절세미인으로 서울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홍 정승은 딸 홍주미를 안동 김씨 문중의 귀공자와 결혼시키기로 했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결혼식장에 세워 놓은 차일 기둥이 쓰러지는 일이 생겼고 신랑이 그 기둥에 맞아 죽게 되었다. 홍주미는 아버지 홍정승에게 자신이 직접 신랑감을 고르겠다고 간청했다. 양반집 딸이 직접 신랑감을 찾는 것은 당시 관습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홍정승은 자기가 결정한 혼사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서 허락했다. 홍주미는 안양 땅으로 내려와서 집을 짓고 지나가는 나그네 중에서 신랑감을 찾고 있었던 것인데 윤학병이 마음에 들었다. 홍주미가 윤학병에게 백년가약을 청했지만 윤학병은 장원 급제만이 목표라고 하면서 거절하고 그 집에서 하룻밤만 묵고 서울로 갔다. 바라던 대로 장원 급제한 윤학병은 자기 고향으로 금의환향했지만 홍주미는 윤학병을 그리워하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후 윤학병의 고향 부안군 노적동에는 3년 동안 가뭄이 심했고 윤학병의 수염에는 오뉴월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고을 사람들이 홍주미의 넋을 위로하라고 제안하여 윤학병은 안양으로 찾아가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그 후로는 그런 일이 없어지고 고을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모티프 분석]
「홍정승 딸의 원귀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신랑감 고르기’, ‘원귀’ 등이다.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하고 있는 원귀 설화는 대부분 원귀가 나타나 자신의 억울함과 원한을 호소하고 다른 사람이 그 원한을 풀어 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지만 「홍정승 딸의 원귀 전설」에서는 다른 원귀 이야기에 비하여 원귀가 등장하는 비중이 거의 없고, 단지 가뭄과 윤학병 수염에 내리는 하얀 서리로 원귀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윤학병의 인물됨이 뛰어나지만 고집이 좀 세다는 내용과 결혼식날 신랑이 죽자 스스로 신랑감을 찾으려 한 홍주미의 모습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당시 혼사에 문제가 생기면 여성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이 컸고, 집안에서도 여성의 그런 상황이 드러나지 않도록 전전긍긍했다.
「홍정승 딸의 원귀 전설」에서는 홍주미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랑감을 찾으려고 한 모습이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윤학병의 인물됨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것은 고집이 세다는 점이다. 절세미인 홍주미의 청혼을 마다하고 장원 급제를 위해 미련 없이 서울로 향하는 윤학병은 전승자의 설명처럼 고집이 세긴 하지만 강직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윤학병이 청혼을 거절한 것이 홍주미에게 원한까지 살 만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결혼식에서 신랑감이 죽자 자기 스스로 신랑감을 찾으려 했고, 자신의 청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죽음에까지 이른 홍주미의 인물됨은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