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3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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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增東國輿地勝覽』 扶餘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행묵 |
[정의]
조선 전기에 편찬된 관찬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충청도 부여현편.
[개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부여현(扶餘縣)은 1530년(중종 25)에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중수하여 편찬한 관찬 지리서이다. 충청도 부여현[충청남도 부여군의 옛 행정 구역]의 지리·풍속·인물 등 여러 측면이 종합적으로 수록되어 있다.
[저자]
『신증동국여지승람』 서문 뒤에는 중수에 참여한 관원들의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행(李荇)[1478~1534]·윤은보(尹殷輔)[1468~1544]·신공제(申公濟)[1469~1536]·홍언필(洪彦弼)[1476~1549]·이사균(李思鈞)[1471~1536]·황효헌(黃孝獻)[1491~1532]·이희보(李希輔)[1473~1548]·정사룡(鄭士龍)[1491~1570]·심사순(沈思順)[1496~1531]·심언광(沈彦光)[1487~1540]·윤개(尹漑)[1494~1566]·원계채(元繼蔡)[1492~1539]·어영준(魚永濬)[1483~1529]·채세영(蔡世英)[1490~1568]·윤계(尹溪)·이억손(李億孫)[1497~1538]·홍서주(洪叙疇)[1499~1546]·황염(黃恬)·이임(李任)·박광우(朴光佑)[1495~1545] 등이 참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여현은 1530년에 간행하였다. 1481년(성종 12) 각 지역의 지리·풍속·인물 등을 정리한 『동국여지승람』이 50권으로 편찬되었는데,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수교 작업이 진행되었다. 1485년(성종 16)에는 김종직(金宗直)[1431~1492] 등에게 명나라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 체제에 따라 증보·수정하도록 하였다. 1499년(연산군 5)에는 노정(路程)의 거리 등의 오류를 발견하고 임사홍(任士洪)[1455~1506]·성현(成俔)[1439~1504] 등에게 수정하도록 하여 산천과 사적 등의 누락을 보충하고 제영의 일부 시문을 보충·산삭(刪削)하였다. 1528년(중종 23)에는 연산군 때 변경된 관제 등을 되돌리고 효자·열녀의 행적 및 시문 등을 보충하여 1530년(중종 25)에 이르러 속편 5권을 합쳐 총 55권의 『신증동국여지승람』을 간행하였다.
[형태/서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4~20에는 충청도 각 군현이 정리되어 있는데, 부여현은 권18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여현에는 가장 먼저 부여현의 경계와 거리가 나타나고, 이후로는 건치연혁(建置沿革), 관원(官員), 군명(郡名), 성씨(姓氏), 형승(形勝), 산천(山川), 토산(土産), 학교(學校), 역원(驛院), 교량(橋梁), 불우(佛宇), 사묘(祠廟), 고적(古跡), 인물(人物), 우거(寓居), 효자(孝子), 열녀(烈女), 제영(題詠) 순으로 기재되어 있다. 대체로 『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따랐으며, 새로 추가된 내용에는 ‘신증(新增)’ 두 자를 첫머리에 삽입하였다. 부여현에서 ‘신증’이 붙은 항목은 ‘고적-소정방 비(蘇定方 碑)’, ‘열녀’, ‘제영-흥망이공여동타(興亡已空餘銅駝)’이다.
[의의와 평가]
『신증동국여지승람』 부여현은 조선 전기 부여 지역의 정치, 경제, 역사, 행정, 사회, 인물 등 여러 측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