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묘내의 유물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712
한자 柳慶宗墓內-遺物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규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59년 - 유경종묘내의 유물 출토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연표보기 - 유경종묘내의 유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20호 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5년 - 유경종묘내의 유물 진주류씨 안간공파 종중에서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유경종묘내의 유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유경종묘내의 유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변경 지정
현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지도보기
원소재지 진주 류씨 안간공파 종중 - 경기도 안양시
출토|발견지 진주 류씨 안간공파 묘역 - 경기도 안양시
성격 유물
소유자 진주류씨 안간공파 종중
관리자 국립부여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시대 문신 류희택, 류전, 류경종의 유물.

[개설]

1959년 진주 류씨(晉州 柳氏) 안간공파(安簡公派) 계열의 후손이 유희택(柳希澤), 유전(柳詮), 유경종(柳慶宗)의 묘를 경기도 안양시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가곡리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20호로 지정되었고, 이듬해인 1985년 3월 소장자가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보관을 의뢰하면서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문화재자료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바뀌었다.

유경종의 할아버지인 유희택은 천문습독관(天文習讀官)을 역임하였고, 아버지인 유전은 1579년(선조 12)에 생원에 급제하였다. 유경종은 1589년)선조 22) 증광시에서 2등 3위, 100명 중 8등으로 급제하였다. 이후 6년 뒤인 1595년[선조 28] 문과 별시 을과 1위로 급제하면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예문관검열, 승정원주서, 예문관대교, 봉교 등을 거쳐 정유재란[1597~1598] 때 함경도도사로 파견되었다가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사간원정언, 헌납, 예조좌랑, 병조정랑, 사헌부지평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친 후에 황해도관찰사, 대사간, 대사헌을 역임한 문신이었다.

[형태]

출토된 유물은 명기(皿器) 3벌 88점, 의복(衣服) 3벌, 골제 빗 1점, 백자 제기 13점이다. 의복은 단령(團領), 직령(直領), 창의(氅衣)으로 구분된다. 단령은 깃이 둥근 형태인 도포로, 운보문사(雲寶紋紗) 홑옷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襠)는 양쪽 겨드랑이에 긴 고름과 짧은 고름이 한 쌍씩 달려 있다. 소매는 넓고 앞뒤로 흉배가 있으며, 그 위로 품대 고리가 달려 있다. 단령에 달린 흉배는 운학 흉배로 추정된다. 흉배 위쪽에는 운문이, 아래쪽에는 수파문과 괴석, 중간에는 두 마리의 학이 있고, 모란 3송이가 새겨져 있다. 단령의 흉배는 직성(織成)되어 가슴과 등 부분에 붙어 있는데, 직성 흉배는 17세기 전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단령에는 고름, 깃, 흉배 아랫부분, 양쪽 어깨선 등에 바느질로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뒷길이는 134.5㎝, 화장은 110㎝, 뒤품은 52㎝이며, 흉배의 크기는 가로 35.8㎝, 세로 33.3㎝이다.

직령은 당코목판깃형의 운보문사 홑직령으로, 단령과는 깃의 차이만 있다.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무가 달려 있으며, 옆선이 트여 있고 뒷자락은 막혀 있다. 소매는 넓은 소매이고 고름은 겉고름과 속고름이 모두 남아 있다. 고름, 깃 등에 바느질로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직령은 17세기 이후 단령의 안감 형태로 사용된 것인데, 함께 확인된 홑단령의 안감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뒷길이는 134.5㎝, 화장은 110㎝, 뒤품은 52.5㎝이다.

창의는 깃은 칼깃이고 운보문사로 이루어져 있다. 뒷길 중심에서 아래로 트였고 트임의 길이는 78㎝이다. 소매는 끝 쪽에서 둥글게 이어지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겨드랑이 등에 바느질로 보수한 흔적이 남아 있다. 뒷길이는 108.5㎝, 화장은 108.5㎝, 뒤품은 54㎝이다.

[특징]

출토된 유물 중에는 의복들은 일부 수리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러나 보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의의와 평가]

유경종묘내의 유물은 16~17세기까지 조선 시대 의복의 조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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