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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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沙宅王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 |
집필자 | 강종원 |
[정의]
충청남도 부여를 수도로 한 백제 사비 시기 무왕의 왕비.
[가계]
사택왕후(沙宅王后)[?~?]는 백제 제30대 무왕의 비이다. 백제 대성팔족(大姓八族)의 하나인 사씨 가문으로, 좌평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다. 사택왕후의 사택씨(沙宅氏)는 사탁씨(沙矺氏) 또는 사탁씨(沙乇氏)라고도 불리며, 단일성으로 표기할 때는 사씨(沙氏)이다. 『수서(隋書)』「백제전」에서 백제의 유력한 여덟 가문인 대성팔족에 대한 기록 중 사씨를 가장 앞부분에 언급한 것으로 보아, 사씨가 사비 시기에 가장 유력한 귀족 세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활동 사항]
사택왕후의 존재는 2009년 1월 미륵사지 서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영기(金製舍利奉迎記)」 명문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서탑 심주석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영기」에 의하면, 사택왕후는 재물을 희사하여 미륵사(彌勒寺)를 조영하였고, 639년(무왕 40) 사리를 안치하였다. 「금제사리봉영기」로 인하여 미륵사를 창건한 인물은 선화왕비가 아니라 사택왕후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무왕 조에 무왕의 비로 신라 선화공주가 등장하기 때문에 무왕의 비는 1명이 아닐 가능성이 있어 사택왕후는 무왕의 제2비 또는 제3비로 보기도 한다. 「금제사리봉영기」 내용을 통하여 사택왕후가 미륵사의 서원을 중영하였으며, 무왕 후반기에 정국을 주도한 세력이 사씨였음을 알 수 있다.
[묘소]
전라북도 익산시 석왕동에 있는 쌍릉 가운데 소왕릉이 무왕의 비 무덤으로 비정되며, 주인공은 선화왕비 또는 사택왕후라는 주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