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100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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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昌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경희 |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의 전통 민속놀이.
[개설]
문창제놀이는 병자호란 당시 31세의 나이로 죽은 황시헌(黃是憲)의 억울한 혼을 달래는 진혼을 겸한 제향에서 출발하는 추모 행사로, 매년 음력 정월 초사흘 날에 지내고 있다. 문창제놀이는 1976년 발굴되어 1980년 12월 26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는 전수자의 부족과 행정적 뒷받침의 부족 등으로 전승되지 못하고 있다.
[유래]
황시헌이 죽은 이듬해 병자호란은 끝났으나 경상남도 창원 지역은 극심한 흉작과 창궐하는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는데 이는 전투에서 죽어간 창원 대도호부군 장졸들의 억울한 한(恨) 때문이라는 중론이 일어 이런 영혼을 달래기 위한 제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부사도 기꺼이 승낙하여 마침내 제향을 올리게 되자 이듬해부터는 질병도 사라지고 풍년이 지속되었다. 그 때부터 인근 주민들이 해마다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과장]
제1과장 제향(祭享)
병자호란 때 순국한 백선남 창원 대도호부사와 황시헌을 비롯한 창원 대도호부군의 장졸들을 제사지내는 과장이다. 좌·우 집사,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및 집례관 등이 참석하며 유교식 제례에 의해 진행된다. 초헌관은 창원 대도호부사가 맡았으나 문창제놀이가 재현된 이후로는 창원 시장이 제주가 되었다.
제2과장 추도무
제2과장은 황시헌과 한 맺힌 젊은 장졸들의 넋을 위로하고, 혼을 위무하는 진혼무 과장이다. 10~15명 정도의 기녀들이 소복 차림으로 한삼(汗衫)을 끼고 황시헌의 비각 앞에 엎드려 배례하고 난 후 원형을 이루어 한삼을 뿌리고 음률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충신 공조정랑 시헌성제, 문창제향 시헌성례"라고 창(唱)을 하면서 진행된다.
제3과장 군노(軍奴)놀이
창원부사·황공(黃公)·관병(官兵)·의병과 청장(淸將)·청병 등이 모두 나와 가상의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 재현되고 적장을 꾸짖고 의롭게 죽어가는 황시헌과 전쟁의 참혹한 광경을 보고 뉘우치면서 물러가는 적군의 모습을 표현한다.
제4과장 매구(埋鬼) 굿
쌍령(雙嶺) 전투에서 순국한 영혼을 위무하는 한마당 놀이 과장이다. 이 마당에는 관·민·농·공·상인은 물론 낙방한 선비·사대부·기녀·술집 주모 등이 특유의 복색으로 어우러져 노는 대동제라고 할 수 있다. 과장 중간에 성신 신고(聖神神誥)가 있어 풍년제와 호국 영령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진혼 행사도 겸하고 있다. 이 매구굿은 황시헌의 비각 앞에서 주민들이 가내 태평과 자손 창성 및 풍농을 기원하는 것이다.
[특징]
문창제놀이는 관 주도로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민속놀이와 차이가 있으며, 억울한 죽음을 당한 개인을 위한 제의에서 출발, 규모가 확대되어 전 군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발전되었다는 특징도 지닌다. 또한 불행하게 죽은 혼을 위로하는 위령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굿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문창제놀이의 외연은 유교적 제의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내용은 무교적 양식을 담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