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245 |
---|---|
한자 | 留糧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은진 |
개설 시기/일시 | 1963년 - 천안시 유량동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96년 11월 1일 - 천안시 원성 1동 관할에 편입 |
변천 시기/일시 | 2008년 6월 23일 - 천안시 동남구 관할에 편입 |
문화재 | 천안 향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190-1 |
박물관 | 우정 박물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60-1 |
교육 기관 | 우정 공무원 교육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60-1 |
교육 기관 | 중앙 민방위 방재 교육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유량동 36 |
성격 | 법정동 |
면적 | 6.10㎢ |
가구수 | 687세대 |
인구[남,여] | 1,559명[남자 869명, 여자 690명]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고려 태조 때 이곳에 군량을 쌓아 두어 유량골[留糧里]이라 불린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형성 및 변천]
고려 때는 천안부에 속했다. 조선 시대 초에는 천안군 상리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교촌, 당후리, 분곡리, 상평리, 하평리, 평리, 신리, 상촌을 병합하여 유량리(留糧里)라 하고 영성면(寧城面)에 편입되었다가, 1917년 영성면을 천안면으로 되어 천안면 유량리, 1931년에 천안면이 천안읍으로 되어 천안읍 유량리, 1938년 10월 1일 유량리를 환성면으로 편입하여 천안군 환성면 유량리가 되었다. 1963년 천안시에 편입되어 유량동(留糧洞)이 되었고 동부 출장소의 관할이고, 1970년에 신안 출장소의 관할이고, 1975년에 행정동인 신안동의 관할이고, 1996년 11월 1일 행정 구역 개편으로 유량동이 행정동인 신안동에서 행정동인 원성 1동로 편입되었다. 2008년 6월 23일 천안시 산하에 행정구인 동남구와 서북구를 설치하면서 동남구에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유량동은 대부분 산지 지형과 곡저 평야로 이루어져 있다. 유량동에는 태조산(太祖山)[421m]이 있으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원성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유량동 북쪽의 후산(後山)이며 천안의 진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산의 모양이 왕(王)자를 닮았다 하여 왕자산(王字山)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유량동에서 안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세목 고개가 있다. 또한 유량동에서 목천면 유왕골로 넘어가는 고개인 도라지 고개는 험하여 여러 고개를 동아서 올라가는데 숨이 차고 기진맥진하여 졸음이 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조라지 고개라고 한다.
[현황]
천안시 동남구에 있는 법정동으로 천안시 중앙부에 있다. 유량동의 면적은 6.10㎢이며, 2012년 7월 현재 687세대, 1,559명[남자 869명, 여자 69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안서동, 신부동, 원성동, 구성동 및 목천읍 덕전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대표적인 자연 마을로는 향교말, 유량골[이량골], 담너머, 동그락산, 벌말, 분톳골, 음달말 등이 있다. 향교말은 한자어로 교촌(校村)이라 하였고, 왕자산 아래 유량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천안 향교가 있었다. 담너머는 양달말 앞쪽에 있는 마을이고, 동그락산은 담너머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벌말은 한자어로 평촌[坪里]이라 하였고, 향교말 앞 벌판에 있던 마을이다. 분톳골은 한자어로 분곡(分谷)이라 하였고 유량골 서쪽 있는 마을로 분토가 났다. 대석골은 절골 입구에 있는 골짜기로 대석과 약수터가 있었다.
유량동은 서쪽에 경부 고속 도로가 지나간다. 유량동에는 현재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9호인 천안 향교,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년의 동남구 유량동 탱자나무[높이 7.5m, 둘레 1.3m]가 있으며 우정 박물관, 우정 공무원 교육원, 태조산 공원 청소년 수련원, 중앙 민방위 방재 교육원, 교보 생명 인재 개발원 등이 입지하고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
2014.08.06 | [자연환경] 수정 | <변경 전> 태조산은 태조 왕건의 ‘태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태조산의 꼭대기인 태조봉은 유려왕산(留麗王山)이라고도 불렀다. 말 그대로 고려의 왕이 머물렀던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북쪽에는 왕자산(王字山)[252m]이 있는데 천안의 진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산의 모양이 왕(王)자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변경 후> 태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유량동 북쪽의 후산(後山)이며 천안의 진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산의 모양이 왕(王)자를 닮았다 하여 왕자산(王字山)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