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320 |
---|---|
한자 | 新德里-城南面-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원회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천안군 성남면 신덕리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63년 - 천안군 성남면 신덕리에서 천원군 성남면 신덕리로 개칭 |
변천 시기/일시 | 1991년 - 천원군 성남면 신덕리에서 천안군 성남면 신덕리로 개칭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 천안군 성남면 신덕리에서 천안시 성남면 신덕리로 개칭 |
변천 시기/일시 | 2008년 - 천안시 성남면 신덕리에서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신덕리로 개칭 |
학교 | 성남 초등학교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신덕리 796번지 |
성격 | 법정리 |
면적 | 4.72㎢ |
가구수 | 172가구 |
인구[남,여] | 362명[남자 173명, 여자 189명]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통페합 대상인 중곡리, 가덕리, 산양리 및 신촌리 중에서 신촌리의 ‘신’ 자와 가덕리의 ‘덕’ 자를 따서 신덕리(新德里)라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목천군 남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신덕리라 하고 충청남도 천안군 성남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충청남도 천원군 성남면 신덕리로, 1991년에 충청남도 천안군 성남면 신덕리로, 1995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성남면 신덕리로, 그리고 2008년에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신덕리로 각각 변경되었다.
[자연 환경]
남쪽 경계부의 대부분은 해발 고도 200여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고, 남부와 서부의 대부분은 해발 고도 100~200m의 구릉성 산지를 형성하고 있다.
북부의 대부분은 승천천의 범람원 충적지로 이루어져 있다. 승천천의 지류인 소하천 가덕천, 가덕후천들은 서부와 남부 구릉성 산지의 곡간 저지대를 흐르고 있고, 이 저지대의 대부분에 범람원 충적지가 형성되어있다.
구릉성 산지 완사면의 곳곳을 밭과 과수원으로 개발되어 있고, 범람원 충적지의 대부분은 논으로 개발되어 있다. 남서쪽 경계부에는 해발 고도 200여m의 높이에 탑고개가 있다. 남동쪽 경계부에는 소규모 저류지 봉양제가 있다.
[현황]
신덕리는 성남면의 남부에 있다. 2012년 8월 31일 현재 면적은 4.72㎢로, 이 중 경지 면적은 논이 0.77㎢, 밭이 0.71㎢이며, 총 172가구에 362명[남자 173명, 여자 18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성남면 대화리·봉양리, 서쪽으로 성남면 대흥리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남쪽으로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북쪽으로 성남면 대흥리·대화리와 이웃하고 있다. 신덕 1~3리의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자연 마을로 가덕[가장골], 화전, 송평, 신촌, 중곡 등이 있다.
승천천과 그 지류 유역 농경지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하천 주변 산기슭 완사면에서는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진다. 특산물로는 배가 있다.
시도 1호선이 북쪽 경계부에서 승천천에 연접해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기타 도로들이 신덕리 곳곳을 지나면서 시도에 연결되고 있다. 경부 고속 국도가 신덕리 거의 북서단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가다리는 제월촌(霽月村), 가덕리라고도 부르는데 가덕리를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강당골은 서당골, 탑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중실 남서쪽 위에 있으며 탑과 강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어리미재는 어리밋재, 빙항령으로도 부르는데 전의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산이 높고 험해 도적이 많아 여러 사람이 어울려 넘어 다녀서 붙여진 이름이다. 노적봉은 중실 동남쪽에 있는 산으로 노적가리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회고개는 이 고개에서 석회가 나와 붙여진 이름이고, 인중 고개는 사람의 콧등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중실은 중곡이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 산에 나무 하러 가다가 이곳에서 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옻샘은 서당골에 있는데 물이 아주 차서 옻오른 데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
매년 중실 앞에서 장승제가 열린다. 길 한쪽에 장승이 나란히 서 있는데 정월 열나흘 오후 4시경 주민 중에서 생기복덕(生氣福德)이 있는 사람들을 제관, 주당, 축관, 보조인으로 삼고, 삼색 실과, 소간류, 술 등을 제물로 놓고 지낸다. 선택된 사람은 목욕재계하고 탈 없이 있다가 제를 지내야 한다고 하며, 마을의 평온을 염원하는 소지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