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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336
한자 竝川里
이칭/별칭 아내,아우내,구계(九溪)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재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2년 10월 1일 - 천안군 갈전면 병천리에서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63년 3월 1일 -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에서 천원군 병천면 병천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1년 - 천원군 병천면 병천리에서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95년 5월 10일 -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에서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2008년 6월 23일 -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에서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로 개칭
성격 법정리
면적 7.03㎢
가구수 959세대
인구[남,여] 2,316명[남자 1,163명, 여자 1,153명]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병천천광기천이 만나는 곳이라 하천이 합쳐진다고 하여 아내, 아우내라고도 하고, 병천이라 하였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일병천(一並川), 이병천(二並川), 일한천(一寒泉), 신촌(新村), 서원(書院)의 일부를 병합하여 병천리(竝川里)라 부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목천군 근동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을 통폐합할 때, 병천리를 개설하여 충청남도 천안군 갈전면에 편입하였다. 1942년 갈전면이 병천면으로 바뀌어 병천면 병천리가 되었다.

1963년 3월 1일 천안읍과 환성면이 합하여 천안시로 승격됨에 따라 천원군 병천면 병천리라 하다가, 1991년에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가 되었다. 1995년 5월 10일 천안시와 천원군이 통합되어 천안시 병천면 병천리가 되었고, 2008년 6월 23일 행정구를 설치함에 따라 동남구 병천면 병천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병천리의 북부에는 은석산작성산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사이에는 북면 매송리로 넘는 개목 고개가 있다. 이곳에서 발원한 서원천병천면 중심부를 흘러 내려오며 비옥한 들을 만들고, 광기천과 만나 병천천으로 흘러든다.

병천면사무소 뒤에 있는 상봉산(上峯山)[237m]은 은석산에서 이어진 산줄기가 마지막 봉우리를 만든 병천의 진산(鎭山)으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현황]

병천리병천면의 서남부에 위치한다. 2011년 12월 현재 면적은 7.03㎢이며, 총 959세대에 2,316명[남자 1,163명, 여자 1,1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부는 탑원리, 북부는 북면, 서부는 가진리, 남부는 수신면 장산리와 경계를 이룬다. 병천 6리를 서원말이라 하는데, 인조 때 사액을 받은 도동 서원(道東書院)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경지 면적은 1.026㎢로 벼농사와 잡곡류를 재배하고, 병천 6리와 병천 8리에서는 소와 돼지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국도 21호선병천리 남부를 동서로 지나며, 지방도 596호선이 송정리를 지나 청주 공항으로, 지방도 693번수신면을 지나 전의 방면으로, 시도 6호선이 봉항리 방면으로, 시도 22호선[구 국도 21호]이 동서로 지난다.

구미산(龜尾山)에는 1989년 11월 19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58호로 지정된 아우내 3·1 운동 독립 사적지(아우내 3·1 運動 獨立 史蹟址)가 있다. 사적지 내에 있는 기념비는 1946년 10월 유관순 기념 사업회에서 세운 것으로, 위당(爲堂) 정인보(鄭寅譜)가 짓고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이 썼다.

병천면사무소를 비롯하여, 천안시 동남구 보건소 병천 보건 지소, 천안 소방서 병천 119 안전 센터, 천안시 동남구 문화원[아우내 문화원] 등이 있다. 병천 초등학교, 관세 국경 관리 연수원, 백석 대학교의 백석 연수원, 아우내 은빛 복지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상봉산 남쪽 구릉에 있는 아우내 장터에서는 지금도 5일장[1일, 6일]이 크게 열린다. 기미 독립 만세 운동의 거사도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장날을 이용하여 이뤄진 것으로 3,0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여 19명이 순국하고 수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매년 기념 행사와 봉화제가 개최된다.

개목 고개에는 아우내장을 보고 가던 장꾼이 술이 취해 쓰러졌을 때 주위에 불이 나자, 따라다니던 개가 몸에 물을 적셔 주인이 불에 타지 않도록 해 주인을 살리고 자신은 지쳐 죽었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9.03.25 [현황] 수정 해양 경찰 학교 이전(20113.11.12.) 내용 반영하여 [현황] 수정
이용자 의견
박** 유관순기념사업회는 1947년 9월 조병옥이 명예회장, 오천석이 초대회장 이라는 기사는 [영명100년사]와 [본기념사업회] 난과 [어떤 블로그]에서 며칠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요 확인 요망 합니다. 2015.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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