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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500440
한자 天安市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단행본
지역 충청남도 천안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87년연표보기 - 『천안시지』 편찬
소장처 도솔 도서관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번영로 156 천안시청 2층 지도보기
성격 향토지|시지
편자 천안시지 편찬 위원회
표제 천안시지

[정의]

1987년 천안시지 편찬 위원회에서 편찬한 충청남도 천안시의 지리·역사·행정·문화 등을 수록한 향토지.

[개설]

1987년에 발행된 『천안시지』는 천안시의 지리와 역사를 비롯하여 행정·문화·산업 등 모든 현황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록하여 1권으로 편찬한 책이다. 천안에는 조선 후기에 발간되었던 개별 읍지가 있었다. 『대록지(大麓誌)』[1779], 『영성지(寧城誌)』[1852], 『직산현지(稷山縣誌)』 등이 그것이다. 『천안시지』의 발간은 이 지역의 읍지를 계승한 편찬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조선 시대 읍지처럼 천안시의 현재 상황을 후대에 전하기 위한 기록화 사업이 바로 시지 편찬 사업인 것이다. 따라서 『천안시지』는 천안시의 모든 자료가 포괄되어 있는 백과사전식 자료라 할 수 있다.

[편찬/간행 경위]

천안 지역은 원래 조선 시대에는 천안, 목천, 직산 등 3개 군현이 있었던 곳이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세 군현을 합쳐 천안군이 되었다. 그 후 1963년에 천안시와 천원군(天原郡)으로 분리되었다. 천안시에서는 1967년에 발간된 『천안시지』 상권과 1969년에 발간된 『천안시지』 하권을 모태로 하여 새로운 『천안시지』를 발간하고자 1983년부터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천안시와 천원군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역사 및 제반 사항이 겹치는 것이 많아 애로가 있었다. 따라서 시로 승격된 1963년 이전의 역사와 인물 부분은 천안군사(天安郡史)로 편찬하고, 시 승격 이후의 현대 부분은 현 천안시에 국한하여 편찬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그러한 원칙 속에서 천안시지 편찬 위원회의 노력으로 1987년에 그 결실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편찬 위원회는 천안시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지역 공무원과 향토 사학자들을 위원으로 구성하였다.

[서지적 상황]

2012년 7월 20일 현재 다섯 권이 천안시 도솔 도서관 행정 자료실에 소장[청구 기호: 911.76천안시 v.1987]되어 있다. 상태는 양호하며, 열람만 가능하고 대출은 불가하다. 도솔 도서관천안시청 2층에 있다.

[형태]

책의 규격은 가로 19㎝, 세로 26㎝이다. 단행본으로서 본문 분량은 총 1,771쪽이다. 겉표지는 파랑색의 하드커버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제1편 지리[제1장 자연 지리, 제2장 생물상, 제3장 인문 지리], 제2편 천안시사[제1장 천안시사 개관, 제2장 상고 시대, 제3장 고려 시대, 제4장 근세조선, 제5장 민족의 항쟁, 제6장 대한민국], 제3편 행정[제1장 행정 조직의 사적 고찰, 제2장 일반 행정, 제3장 개발 행정, 제4장 선거], 제4편 문화[제1장 종교, 제2장 교육사, 제3장 문화 예술, 제4장 언어, 제5장 언론, 제6장 정당, 제7장 사회단체, 제8장 체육], 제5편 산업 및 광공업 경제[제1장 산업, 제2장 광공업, 제3장 상업 금융], 제6편 성씨·인물[제1장 성씨, 제2장 인물], 제7편 문화재 및 사적지[제1장 문화재, 제2장 성지 산천, 제3장 향교와 서원·사우·가묘, 제4장 관우누정 고적 유사, 제5장 사찰·석탑·신당, 제6장 승지·명목·거수, 제7장 비, 제8장 제영], 제8편 민속과 전설[제1장 민간 신앙, 제2장 민간 요법, 제3장 금기, 제4장 통과 의례, 제5장 민요, 제6장 세시 풍속 및 놀이, 제7장 복식, 제8장 음식, 제9장 주생활]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뒷부분에 부록이 첨부되어 있는데, 천안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 후기 읍지인 『목천읍지』, 『대록지』, 『영성지』, 『목천현지』, 『직산현지』의 영인본을 붙여 놓았다.

[의의와 평가]

원래 천안시와 천원군은 한 묶음으로 향토지를 엮어야 하나 당시 행정 구역이 분리되어 있어서 군지 편찬에 애로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천안시에 관한 종합적인 기록을 만들어 놓음으로써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특이한 점은 뒷부분에 천안 지역의 대표적인 조선 후기 읍지들의 영인본을 붙여 놓았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 시대 전통 읍지와 현대 군지의 연속성과 함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시도로 평가된다. 조선 후기 읍지를 부록으로 붙여 놓은 것은 『천원군지』[1984]의 영향인 듯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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