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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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二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을경 |
출생 시기/일시 | 1906년 11월 14일 - 한이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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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0일 - 한이순 입장 장터 만세 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1월 31일 - 한이순 사망 |
출생지 | 한이순 출생지 - 충남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 92번지 |
활동지 | 입장 장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양대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3·1 운동 |
[정의]
일제 강점기 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한이순(韓二順)[1906~1980]은 1906년 11월 14일 충청남도 천안군 입장면 양대리에서 출생하였다. 그 외 가계나 학력 등은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1919년 입장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입장 장터 만세운동은 처음 강기형, 안세봉이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0일 광명학교 교사였던 강기형은 직산금광 광부 안시봉과 함께 광명 학교의 교사와 학생들을 인솔하여 만세 운동을 진행할 것을 협의하고, 3월 17일경 재차 이에 대해 논의하였다. 3월 20일 오전 10시경 안시봉과 강기형은 학생 수십명과 함께 직산 금광의 광부, 인근 주민 약 70여 명을 인솔하고 양대리 시장에 도착하였다. 안시봉은 자기 집에서 제작한 태극기를 강기형, 한이순 등에게 나누어 주었고, 이들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시장을 누볐다. 시위대는 양대리 시장에서 3㎞ 떨어진 하장리(下場里)의 입장 시장으로 향하면서 만세 행진을 계속하였다. 양대리 시장에서 70여 명이었던 만세 운동 대열은 입장 시장에서는 600~700명으로 늘어났다. 한이순은 이 사건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