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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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杏亭里九亭- |
이칭/별칭 | 광다리기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행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성복 |
놀이 장소 | 행정리 구정 줄다리기 -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행정리 구정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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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민속놀이|세시 풍속 |
노는 시기 | 정월 대보름 |
관련 의례 행사 | 풍년 고사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광덕면 행정리 구정 마을에서 홀수 해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는 정월 대보름 민속놀이.
[개설]
천안시 광덕면 행정리 구정 마을의 줄다리기는 동제인 산신제, 수살제와 격년으로 거행된다. 즉 짝수 해는 음력 정월 14일 저녁에 산신제와 수살제를 지내고, 홀수 해는 정월 14~16일까지 3일 동안 풍농을 기원하는 줄다리기를 한다. 마을에서는 줄다리기를 속칭 광다리기라고 부른다.
행사 준비는 음력 정월 초사흘에 열리는 대동 회의에서 일정, 재원, 행사 규모 등을 논의한다. 비용 마련을 위해 예전에는 정월 초나흘부터 집집마다 걸립(乞粒)을 돌아 지신밟기를 해주고 쌀이나 돈을 추렴했다.
구정 마을 줄다리기는 이웃한 다섯 마을이 함께 참여하는 행사였다. 참여했던 마을은 행정리 행촌, 대평리 대평원, 운강리 운당[연기군 전의면], 운강리 당너머 등이다.
[연원]
구정 마을 줄다리기의 연원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주민들에 따르면 예로부터 다섯 마을이 한 해 걸러 한 번씩 모여 줄다리기를 하며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주민들의 단합을 도모했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광줄’은 행사 2~3일 전부터 집집마다 짚단을 추렴해 제작에 들어간다. 이때 남자들은 새끼줄을 꼬아 광줄을 엮고, 여자들은 술과 음식을 준비해 대접한다. 광줄의 길이는 수줄과 암줄이 각각 100m 가량 되었다. 각각의 줄은 남성인 청룡과 여성인 백호를 상징한다. 광줄이 완성되면 수줄은 남성이 매고, 암줄은 여성이 매는 것이 관례이다. 이때 맨 앞에는 의관을 잘 갖춘 무동을 태워 덩실덩실 춤을 추고 풍물패들은 흥겨운 길군악을 울리며 행진을 한다. 암줄과 수줄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줄다리기를 행하는 도로변으로 이동을 한다. 행사장에 도착하면 참나무로 만든 고[비녀장]를 가로질러 암줄과 수줄을 연결한다.
[놀이 방법]
땅거미가 지면 줄다리기에 참여하는 다른 마을에서도 풍물패를 앞세우고 속속 집결한다. 이때 구정 마을의 풍물패는 북쪽에 있는 운당리로 풍장을 치고 가서 줄다리기에 참석할 주민들을 맞이한 다음, 아랫동네인 대평리로 가서 주민들을 마중하여 온다. 이렇게 해서 다섯 마을이 행사장에 집결하면 보름달이 뜰 때까지 술을 마시며 풍물놀이를 한다. 이윽고 달이 솟아오르면 광줄 앞에 제상을 차리고 풍농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풍년 고사를 지낸다.
줄다리기는 남성[청룡]과 여성[백호]으로 편을 나누어 진행하는데 혼인을 하지 않은 청년들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여성 편에 서는 것이 관례이다. 또한 참석 인원은 헤아리지 않고 오랜 마을의 전통에 따라 양편으로 갈라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줄다리기는 징소리를 신호로 시작된다. 모두 세 판을 겨루어서 두 판을 먼저 이기는 편이 승리하게 된다. 마을에서는 여자 편이 이겨야 그 해 보리농사가 풍년이 들고 무탈하다고 한다. 그래서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부녀자들은 남자들을 때리고 꼬집으며 훼방을 놓는다. 심지어 물이나 오물을 투척하여 남자들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정월 14일부터 16일까지 매일 밤 줄다리기를 한 뒤 다섯 마을의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3일간 풍물놀이를 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줄다리기를 마친 암줄과 수줄은 버리지 않고 보관을 했다가 둑을 막는 물막이용으로 사용했다.
[현황]
구정 마을 줄다리기는 40여 년 전 새마을 사업 시기에 중단되었다가 1999년 주민들의 화합을 도모하고 전통문화를 계승하기 위해 부활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다섯 마을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행사가 아니라, 단지 향우회가 중심이 되는 구정 마을의 정월 대보름 행사로 규모가 축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