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김해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106
한자 金海得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우산리 158번지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4년연표보기 - 김해득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3년 10월 - 김해득 강제 징집되어 평양 42부대 입대
활동 시기/일시 1944년 5월 5일 - 김해득 완전 무장을 하고 일본군 탈출
활동 시기/일시 1944년 5월 16일 - 김해득 한국광복군 무호 지구 공작대의 지하 공작원으로 항일 첩보 활동함
활동 시기/일시 1944년 11월 - 김해득 광복군 총사령부 집결 명령을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45년 5월 - 김해득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 편입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김해득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44년 5월 5일 - 신인식·안담용·이언권 등과 함께 일본군을 탈출
출생지 김해득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우산리 158번지지도보기
활동지 김해득 활동지 - 중국 중경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한국광복군 무호 지구 공작대 지하 공작원|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해득은 1924년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우산리 158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44년 중국 중경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해득(金海得)[1924∼?]은 1943년 10월 중순 일제에 강제로 징집되어 평양 42부대에 입대한 후, 중국 남경 지구로 출정하여 현지에서 군사 교육을 받고 제6213부대에 배속되었다. 무호(蕪湖)에 주둔하고 있던 중 한국광복군 지하 공작반의 선전문을 통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와 한국광복군의 항일 투쟁 상황을 듣고 깊이 감격하여 독립군이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김해득은 일본군에서 동지를 규합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탈출의 기회를 엿보았다.

1944년 5월 5일 탄압 작전에 참전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완전 무장을 한 채 야간을 이용하여 신인식(申仁植)·안담용(安潭容)·이언권(李彦權) 등과 함께 탈출하였다. 이후 중국군 유격대를 거쳐 1944년 5월 16일부로 한국광복군 무호 지구 공작대(蕪湖地區工作隊) 류임창(柳任昶)과 접촉하여 초모 위원 서파(徐波)로부터 무호 지구 지하 공작원의 임명장을 받았다. 그는 무호 일대를 거점으로 공작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중앙군 유격대의 일원으로 항일 첩보 활동을 하였다. 특히 동포 청년의 포섭 활동과 일본군내 한국인 병사의 탈출 공작, 그리고 군자금 조달 등 지하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4년 11월 광복군 총사령부 집결 명령을 받고, 1945년 1월 초에 중경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군사 교육을 받고 1945년 4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에 편입되어 활동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