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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1123
한자 李承玉
이칭/별칭 이승덕(李承德)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0년 11월 20일연표보기 - 이승옥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20일 - 이승옥 청도읍 거연리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2일 - 이승옥 대구 지방 법원에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징역 1년 선고 받음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28일 - 이승옥 대구 복심 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이승옥 대한민국 임시 정부 특파원 박윤조에게 군자금 700원 전달
활동 시기/일시 1922년 11월 - 이승옥 임시 정부 특파원 박윤조에게 군자금 400원 전달
활동 시기/일시 1923년 - 이승옥 대구에서 일본 상품 불매 운동 전개
활동 시기/일시 1924년 10월 - 이승옥 600원을 박윤조를 통하여 임시 정부에 전달
몰년 시기/일시 1983년 5월 7일연표보기 - 이승옥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7년 - 이승옥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 - 이승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이승옥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지도보기
활동지 이승옥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청도읍 거연리 만세 운동 주도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승옥은 1900년(광무 4) 지금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거연리(巨淵里)에서 출생하여 1983년 사망하였다. 1919년 4월 20일 청도읍 거연리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1921년 이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군자금을 송부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활동 사항]

이승옥(李承玉)[1900∼1983]은 단산 서당(丹山書堂)의 학생으로 전국 각지로 만세 운동이 확산되어 가는 것을 접하고는, 3월 31일 자기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그 위에다 ‘대한 독립 만세’라고 크게 썼다. 그리고 이를 경부선 철로 변에 높이 달아 사람들에게 독립 의지를 고취시켰다.

또 4월 20일 밤 단산 서당에서 학생인 이만희(李晩羲)·성삼백(成三伯)·최갑수(崔甲壽)·최술권(崔述勸) 등과 태극기 1매씩을 제작하여 이날 밤 다시 철로 변에 세우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승옥은 일제의 검속으로 체포되어 1919년 6월 28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받고 대구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한 뒤 1921년 김진효(金鎭孝) 등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특파원인 박윤조(朴允祚)를 통하여 군자금 700원을 전달하였으며, 이듬해 11월에는 다시 조경윤(趙景潤)·이정희(李庭禧) 등과 군자금 400원을 박윤조를 통하여 전달하였다. 1923년에도 김영동(金英動)과 같이 대구에서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듬해 10월에는 자신의 토지를 처분한 금액 600원을 박윤조를 통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전달하는 등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고,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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