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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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壽永 |
이칭/별칭 | 강만수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권대웅 |
출생 시기/일시 | 1889년 - 강수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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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강수영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 독립단 검찰로 일함 |
활동 시기/일시 | 1920년 8월 19일 - 강수영 신의주 지청에서 제령 7호 위반 징역 8개월 선고받음 |
활동 시기/일시 | 1921년 3월 20일 - 강수영 출옥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1월 - 강수영 대한 통군부 하부 기관인 남만 통일회 후원대 선전 위원 |
활동 시기/일시 | 1922년 8월 - 강수영 남만 통일 촉성회 대한 통군부 대표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12월 - 강수영 재만 동포 옹호 진주 동맹 발기인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1월 - 강수영 진주 청년 동맹 조직 준비 위원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3월 - 강수영 사회 운동자 생활 보장 기관 제난회 위원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3월 - 강수영 경상남도 청년 연맹의 중앙 위원 |
출생지 | 강수영 출생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
활동지 | 강수영 활동지 - 중국 길림성 환인현 육도하자 |
활동지 | 강수영 활동지 - 경상남도 진주시 |
활동지 | 강수영 활동지 - 경상남도 마산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 독립단 검찰|대한 통군부 대표|통의부 검무원|경상남도 청년 연맹 중앙 위원 |
[정의]
일제 강점기 청도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강수영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출신으로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대한 독립단(大韓獨立團) 감찰과 대한 통군부에서 활동하였으며, 통의부의 결성에 참여하고 검무원으로 일했다. 1920년대 중반 귀국하여 진주와 마산 등지에서 활발하게 사회 운동을 펼쳤다.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활동 사항]
강수영(姜壽永)[1889∼?]은 1919년 3·1 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환인현(桓因縣) 육도하자(六道河子)에 살면서 대한 독립단의 검찰(檢察)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1920년 안동현 주재 일본 영사관 경찰에 붙잡혀, 1920년 8월 19일 신의주 지청에서 제령 7호 위반으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신의주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뒤, 1921년 3월 20일 출옥하였다.
1922년 1월 남만주 독립운동 단체 대표자들이 독립운동 단체를 통일하기 위해 결성한 대한 통군부(大韓統軍府)의 하부 기관인 남만 통일회 후원대(南滿統一會後援隊)의 선전 위원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1922년 8월에는 대한 통군부의 간부 및 독립운동 단체, 그리고 각 교회 대표들이 결성한 남만 통일 촉성회(南滿統一促成會)의 대한 통군부 대표로 참가하였다. 남만 통일 촉성회에 참가한 대표들은 대한 통군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것을 결의하고, 8월 30일 남만 한족 통일회(南滿韓族統一會)를 개최하여 통일 기관 통의부(統義府)를 조직하였다. 강수영은 통의부의 결성에 참여하고 검무원으로 활동하였다.
1920년대 중반 귀국하여, 1927년 12월 재만 동포 옹호 진주 동맹(在滿同胞擁護晉州同盟)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이 단체는 진주 청년회가 진주 지역 각 사회단체를 묶어낸 것이었다. 이어서 강수영은 1928년 1월 진주 청년회를 해체하고 진주 청년 동맹을 조직하는 준비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 같은 해 3월 진주 지역 각 사회단체 대표들이 사회 운동자 생활 보장 기관으로 조직한 제난회(濟難會)의 위원, 경상남도 청년 연맹의 중앙 위원으로 뽑혀 서무부 위원이 되었다. 그러다가 1928년 6월 경상남도 청년 연맹 창립 대회 당시 배포한 의안을 꼬투리 삼은 일제가 관련자 8명을 검찰에 기소하였는데, 그도 여기에 얽혀 징역 3개월을 언도받았다. 1929년부터 1930년에는 마산 청년 동맹과 경상남도 청년 연맹 중앙 집행 위원으로 활동했고 진주 기자단·기근 구제 위원회·형평사 경상남도 연맹 간부 등을 지내며 활발하게 사회 운동을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