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65 |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 송장수 삼계리 경비 단장을 역임 |
---|---|
몰년 시기/일시 | 1949년 - 송장수 빨치산에 의해 살해 |
거주|이주지 | 송장수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
활동지 | 송장수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
성격 | 반공 투사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마을 경비 단장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개설]
송장수는 운문사 부근에 거주하면서 일제 강점기 때부터 마을의 이장 일을 맡아 왔다. 해방이 되면서 마을이 혼란스러워지자 줄곧 마을 경비 단장을 맡아 반공 활동을 전개하다가 빨치산에 끌려가 죽음을 당하였다.
[활동 사항]
해방 이후 남조선 인민 유격대는 전국적으로 5개 유격 전구를 결성하였는데 당시 운문산(雲門山) 일대는 영남 유격 지구 내 중요 거점 중 하나였다. 운문사 부근에 거주하고 있던 송장수[?∼1949]는 해방 전부터 마을 이장 일을 하였는데, 해방이 되고 마을이 혼란에 빠지자 경비 단장으로 일하였다. 동네 경비를 책임지면서 빨치산의 동향을 파악하고 빨치산이 출몰하면 운문 지서에 신고하곤 했다.
1948년 4월 운문산에서 벌목을 한 후 하산하던 송장수는 도중에 빨치산을 만나 그들이 묻는 바를 대답해 주고 귀가한 후 운문 지서에 곧바로 이 사실을 알렸다. 운문 지서에서는 다음날 의용 소방대원, 경비 대원 등과 함께 신고한 지역을 수색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다시 운문산 중턱을 수색 하던 중 나물을 따던 30대 김 모라는 청년을 발견하고 생포했으나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해 그냥 풀어주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1949년 8월 9일 빨치산 일당이 삼계리에 침입하여 송장수의 집을 노략질한 후 경비 본부로 몰려갔다. 경비 본부에 있던 경비원들은 미리 알아채고 몸을 피했으나 송장수는 피하지 못하고 구타당한 후 끌려가 다음날 아침 칼에 찔려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