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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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10월 11일 - 김병찬 정부 표창장제7721호 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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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김병찬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
활동지 | 김병찬 활동지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
성격 | 반공 투사 |
성별 | 남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에서 빨치산에 항거한 반공 투사.
[개설]
김병찬은 빨치산이 자주 출몰하여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고 식량과 가축을 약탈하는 것에 분노하여 운문 지서에 토벌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신고한 사실이 빨치산에게 알려져 그들에게 잡혀서 경찰과 함께 싸우기를 강요당하였으나 끝까지 버티다가 죽음을 당하였다.
[활동 사항]
산동 지역에 위치한 청도군 운문면은 운문산(雲門山)에 둘러싸인 산지이기 때문에 농토가 적고 산간 촌락이 많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운문면은 해방 이후 빨치산들이 가장 많이 출몰하는 지역 중 하나였다.
김병찬[?∼?]이 거주하던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일대도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해방 이후 빨치산이 자주 출몰하였다. 마을에 몰려온 빨치산들은 비협조적인 주민들을 학살하고 식량과 가축을 약탈한 뒤 도망가곤 하였다. 이러한 빨치산 만행에 분노한 김병찬은 운문 지서에 토벌을 요청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신고한 사실이 빨치산에게 알려져 그들에게 잡혔고, 만약 경찰이 출동하면 함께 싸울 것을 강요당하였다. 요구에 불응하자 빨치산 일당은 김병찬을 포박하려 하였고, 이에 김병찬은 재빨리 총을 빼앗아 빨치산 1명에게 타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힘이 부족하여 붙잡힌 김병찬은 계속 경찰과 함께 싸우기를 종용하는 빨치산에게, “내가 죽으면 죽었지 조국을 배신하지는 못하겠다.”라고 말하며 끝내 협조하지 않았다. 그러자 빨치산들은 마을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칼로 목을 그어 살해하고 죽창으로 몸을 찌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상훈과 추모]
정부에서는 투철한 반공정신과 빨치산에 항쟁 의거한 사실을 참작하여 1963년 10월 11일 내각 수반 김현철(金顯哲) 명의의 표창장[제7721호]을 유족에게 수여 격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