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2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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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甫城府 |
이칭/별칭 | 재암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김호동 |
개정 시기/일시 | 1018년 - 보성부 예주로 이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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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보성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파천면 |
[정의]
경상북도 청송 지역에 있었던 고려 전기의 행정구역.
[개설]
보성부(甫城府)는 기존의 진보현(眞寶縣)과 진안현(眞安縣)을 합쳐 설치된 행정구역으로 1018년(현종 9) 예주로 이속되기까지 지금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파천면 일대에 있었다. 재암성(載巖城)이라고도 불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보성부는 고려 전기 기존의 진보현과 진안현을 합친 것이다. 고려 건국과 후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지방의 효율적인 통치와 호족 세력의 공과(功過)를 감안하여 지방 행정구역을 개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보성부가 두어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는 통일신라 후기 재암성의 장군 선필(善弼)이 왕건을 도왔다는 기사가 수록되어 있다. 이에 보성부 승격이 이 지역 호족 선필의 공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관련 기록]
보성부에 대해서는 자료가 매우 소략하다. 고려 및 조선시대 때 간행된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지명 변경과 연혁이 간략히 언급되어 있는 정도이다.
『삼국사기』 권35, 잡지(雜志) 제4, 지리(地理) 2, 신라조(新羅條)에 따르면 “진안현은 본시 고구려의 조람현(助攬縣)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였으니 지금의 보성(甫城)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 권57, 지(志) 제11, 지리(地理) 2, 경상도(慶尙道) 예주조(禮州條)에는 “보성부[재암성이라고도 함]는 신라 경덕왕이 칠파화현(漆巴火縣)을 진보현으로, 고구려 때의 조람현을 진안현으로 고쳤는데, 고려 초에 이 두 개 현을 합쳐 보성부를 설치하였으며, 현종(顯宗) 9년에 본 주에 소속시켰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권150,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 진보현에는 “경덕왕이 칠파화현을 고쳐 진보라 하였으며, 문소군(聞韶郡)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는데, 지금의 보성(甫城)이다. 또 ‘고구려의 조람현을 고쳐서 진안(眞安)으로 하여 야성군(野城郡)의 영현을 삼았는데, 지금의 보성부다.’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진보·진안 두 현이 합하여 보성부가 된 것이다. 고려 현종 무오년(戊午年)에 예주 임내(任內)에 붙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5, 경상도 진보현, 건치연혁조(建置年革條)에는 “칠파화현을 신라 경덕왕이 진보로 고치고, 문소군의 영현으로 삼았으며, 조람현을 경덕왕이 진안으로 고치고, 야성군의 영현으로 삼았는데, 고려 초에 두 현을 합하여 보성부를 설치하였다. 어떤 이는 재암성이라고도 한다. 현종은 예주에 귀속시켰는데 뒤에 왜구(倭寇)로 인하여 주민이 모두 없어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1018년(현종 9) 지방 행정구역 개편이 있을 때, 예주[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일대]의 임내가 되었다.
[의의와 평가]
보성부의 설치와 예주로의 이속(移屬)은 고려 전기 지방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단행되어, 중세 국가의 지방통치 구조를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