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거 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800580
한자 世居姓氏
영어공식명칭 A Family Name of Residing for Generations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청송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석달호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여러 대에 걸쳐 계속 살아오고 있는 성씨.

[개설]

성관(姓貫)의 연원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일한 다음 전국의 군·현의 이름을 개정하고 개국공신을 책봉했던 940년(태조 23)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이전 고대국가에서 성씨는 왕족과 극히 일부 중앙 귀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후삼국시대 성주(城主)·장군(將軍)·촌주(村主) 등의 신분을 지니면서 지방 세력을 대표하던 지방 귀족, 이른바 호족(豪族)들은 고려의 개국과 후삼국 통일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개국공신에 오르고 태조 왕건으로부터 성씨를 하사받게 된다. 이후 호족들의 성씨는 출신지 또는 거주지를 본관으로 하는 세거 성씨가 되어갔다.

[청송 지역의 토성]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존재했던 청송 지역의 토성(土姓)은 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통해 살펴볼 수 있는데, 청부현(靑鳧縣)·안덕현(安德縣)·송생현(松生縣)·진보현(眞寶縣)의 일부가 지금의 청송 지역에 해당한다. 먼저 청부현 토성으로는 심씨(沈氏), 김씨(金氏), 전씨(全氏), 장씨(蔣氏), 신씨(申氏)가 있었다. 송생현 토성으로는 윤씨(尹氏), 노씨(盧氏), 전씨가 있었으며, 내성(來姓)으로 전씨, 박씨(朴氏), 이씨(李氏)가 있었고, 촌성(村姓)으로 정씨(鄭氏)가 있었다. 안덕현의 토성으로는 김씨, 이씨, 손씨(孫氏), 전씨, 장씨가 있었다. 진보현의 토성으로는 조씨(趙氏), 이씨, 김씨, 박씨, 백씨(白氏)가 있었으며, 속성(續姓)으로 전씨가 있었다. 그리고 진보현의 부곡(部曲)이었던 춘감부곡(春甘部曲)과 파질부곡(巴叱部曲)에는 오씨(吳氏)가 있었다. 이러한 토성 세력은 고려 초기 해당 지역에 유력한 호족 가문을 형성하였으며, 10세기 후반 이후에는 향리(鄕吏)로 편제되어 지역의 행정·재정·군사 등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점진적으로 지방관 파견이 확장되고, 중앙의 지방 통제력이 강화되면서 호장층(戶長層)을 형성하던 유력한 향리 세력은 고려 말부터 조선 초 향리역(鄕吏役)에서 이탈하며 새롭게 사족층(士族層)을 형성해 나갔다. 그 가운데 사족층으로 분화하지 못한 몇몇 토성은 소멸되기도 하였다. 아울러 사족층을 형성한 토성 세력은 상경종사(上京從仕)를 통해 관료로 진출하였고, 그 가운데 남녀균분상속(男女均分相續)과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의 전통 속에 타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청송 지역의 유력한 토성인 청송심씨(靑松沈氏)가 전국에 분포하고 있는 것도, 일찍이 사족 가문으로 성장하여 혼인을 통해 타관(他官)으로 이주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청송 토성으로는 청송심씨, 진성이씨(眞城李氏)[진보이씨], 진보조씨(眞寶趙氏)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청송 지역의 이주 성씨]

고려 말부터 조선 초 청송의 토성 세력 가운데 사족으로 분화한 가문은 과거 급제나 혼인을 매개로 타관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는 반대로 타관 출신 사족 가문의 청송 정착을 견인하였다. 타관 출신의 사족 가문이 청송 지역 출신의 사족 가문과 혼인을 통해 청송으로 이주해 왔던 것이다. 이에 남귀여가혼이 일반적이었던 조선 전기까지 지속적으로 타관 출신 사족 가문이 청송으로 이주해 왔는데,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전란을 피해 청송에 정착해 온 가문이 많았다. 이에 조선 후기에 편찬된 읍지류의 청송도호부(靑松都護府)진보현 편에는 토성 이외에도 타관에서 이주해 온 여러 성씨가 망라되어 있다. 즉, 1832년(순조 32)경 편찬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청송도호부편에는 김씨, 이씨, 손씨, 전씨, 설씨(薛氏), 조씨, 권씨(權氏), 민씨(閔氏), 신씨, 남씨(南氏)가 새로운 성씨로 등장한다. 또한 1783년부터 1787년에 편찬된 『진보현읍지(眞寶縣邑誌)』에는 토성 이외에도 권씨, 김씨, 신씨, 안씨(安氏), 이씨, 박씨, 최씨(崔氏), 남씨, 정씨가 새롭게 확인된다.

한편, 조선시대 이후 가문 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조선 전기까지 확인되던 토성 가운데 사족 가문으로 성장하지 못한 세력은 개성(改姓)·개관(改貫)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또한 일부 토성은 본관지를 떠나 완전히 타 고을로 이주하며, 본관지와의 연고가 끊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 청송 지역 성씨 세력도 재편되는데, 1937년 간행된 『청기지(靑己誌)』에는 조선시대 이후 청송 지역에서 활동한 유력한 재지사족 가문이 망라되어 있다.

여기서 확인되는 성관은 총 36성인데, 청송심씨, 함안조씨(咸安趙氏), 영양남씨(英陽南氏), 안동김씨(安東金氏), 의성김씨(義城金氏), 경주김씨(慶州金氏), 진보이씨, 가평이씨(加平李氏), 경주이씨(慶州李氏), 달성서씨(達城徐氏), 아산장씨(牙山蔣氏), 평산신씨(平山申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경주박씨(慶州朴氏), 경주최씨(慶州崔氏), 해주최씨(海州崔氏), 안동권씨(安東權氏), 여흥민씨(驪興閔氏), 파평윤씨(坡平尹氏), 장수황씨(長水黃氏), 창원황씨(昌原黃氏), 상주황씨(尙州黃氏), 청주정씨(淸州鄭氏), 동래정씨(東萊鄭氏), 전주류씨(全州柳氏), 풍산류씨(豊山柳氏) 등이 대표적인 성관으로 확인된다.

[현황]

2015년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청송군의 성씨와 인구 분포는 다음과 같다. 청송군에는 전체 88개 성(姓)이 조사되었는데, 인구 100명 이상의 본관별 주요 성씨는 다음과 같다.

진주강씨(晋州姜氏) 300명, 안동권씨 1,064명, 경주김씨 746명, 광산김씨(光山金氏) 165명, 김녕김씨(金寧金氏) 403명, 김해김씨(金海金氏) 1,385명, 의성김씨 842명, 월성김씨(月城金氏) 263명, 안동김씨 687명, 영양남씨 488명, 여흥민씨 126명, 밀양박씨 1,435명, 영해박씨(寧海朴氏) 110명, 흥해배씨(興海裵氏) 171명, 수원백씨(水原白氏) 181명, 달성서씨 342명, 평산신씨 423명, 청송심씨 626명, 순흥안씨(順興安氏) 191명, 해주오씨(海州吳氏) 131명, 함양오씨(咸陽吳氏) 28명, 단양우씨(丹陽禹氏) 157명, 파평윤씨 930명, 경주이씨 605명, 벽진이씨(碧珍李氏) 144명, 영천이씨(永川李氏) 201명, 월성이씨(月城李氏) 477명, 전주이씨(全州李氏) 452명, 진성이씨 217명, 안동임씨(安東林氏) 237명, 예천임씨(醴泉林氏) 203명, 인동장씨(仁同張氏) 221명, 경주정씨(慶州鄭氏) 106명, 동래정씨 277명, 오천정씨(烏川鄭氏) 101명, 청주정씨 103명, 창녕조씨(昌寧曺氏) 108명, 한양조씨(漢陽趙氏) 133명, 함안조씨 841명, 영양천씨(潁陽千氏) 103명, 경주최씨 470명, 월성최씨(月城崔氏) 208명, 청주한씨(淸州韓氏) 159명, 남양홍씨(南陽洪氏) 168명, 평해황씨(平海黃氏) 1,001명 등이다.

인구 20명 이상 100명 미만의 본관별 성씨는 다음과 같다.

제주고씨(濟州高氏) 38명, 현풍곽씨(玄風郭氏) 69명, 능성구씨(綾城具氏) 20명, 능주구씨(綾州具氏) 22명, 봉화금씨(奉化琴氏) 26명, 강릉김씨(江陵金氏) 44명, 금녕김씨(金寧金氏) 61명, 김영김씨(金寧金氏) 93명, 분성김씨(盆城金氏) 77명, 삼척김씨(三陟金氏) 51명, 상산김씨(商山金氏) 47명, 일선김씨(一善金氏) 36명, 순천김씨(順天金氏) 29명, 수안김씨(遂安金氏) 27명, 선산김씨(善山金氏) 61명, 의령남씨(宜寧南氏) 49명, 성주도씨(星州都氏) 25명, 문화류씨(文化柳氏) 24명, 전주류씨 88명, 남평문씨(南平文氏) 91명, 여주민씨(驪州閔氏) 25명, 경주박씨 20명, 무안박씨(務安朴氏) 43명, 반남박씨(潘南朴氏) 37명, 순천박씨(順天朴氏) 28명, 월성박씨(月城朴氏) 61명, 함양박씨(咸陽朴氏) 80명, 온양방씨(溫陽方氏) 23명, 김해배씨(金海裵氏) 37명, 대구서씨(大丘徐氏) 35명, 창녕성씨(昌寧成氏) 62명, 경주손씨(慶州孫氏) 77명, 밀양손씨(密陽孫氏) 98명, 월성손씨(月城孫氏) 55명, 일직손씨(一直孫氏) 20명, 여산송씨(礪山宋氏) 34명, 은진송씨(恩津宋氏) 67명, 아주신씨(鵝州申氏) 69명, 영해신씨(寧海申氏) 86명, 죽산안씨(竹山安氏) 20명, 남원양씨(南原梁氏) 64명, 영월엄씨(寧越嚴氏) 44명, 파주염씨(坡州廉氏) 25명, 함양오씨 28명, 장흥위씨(長興魏氏) 34명, 기계유씨(杞溪兪氏) 45명, 강릉유씨(江陵劉氏) 61명, 문화유씨(文化柳氏) 34명, 전주류씨 40명, 가평이씨 60명, 고성이씨(固城李氏) 88명, 광주이씨(廣州李氏) 24명, 선성이씨(宣城李氏) 20명, 성산이씨(星山李氏) 39명, 성주이씨(星州李氏) 62명, 안성이씨(安城李氏) 24명, 여주이씨(驪州李氏) 55명, 연안이씨(延安李氏) 36명, 재령이씨(載寧李氏) 50명, 전의이씨(全義李氏) 65명, 진보이씨 56명, 한산이씨(韓山李氏) 26명, 합천이씨(陜川李氏) 25명, 풍천임씨(豊川任氏) 23명, 나주임씨(羅州林氏) 54명, 울진임씨(蔚珍林氏) 84명, 평택임씨(平澤林氏) 75명, 순천장씨(順天張氏) 46명, 안동장씨(安東張氏) 28명, 울진장씨(蔚珍張氏) 25명, 아산장씨 90명, 용궁전씨(龍宮全氏) 49명, 정선전씨(旌善全氏) 48명, 담양전씨(潭陽田氏) 42명, 나주정씨(羅州丁氏) 38명, 연일정씨(延日鄭氏) 91명, 영일정씨(迎日鄭氏) 56명, 풍양조씨(豊壤趙氏) 21명, 신안주씨(新安朱氏) 28명, 충주지씨(忠州池氏) 86명, 여양진씨(驪陽陳氏) 22명, 연안차씨(延安車氏) 43명, 인천채씨(仁川蔡氏) 57명, 강릉최씨(江陵崔氏) 32명, 전주최씨(全州崔氏) 50명, 해주최씨 29명, 진주하씨(晋州河氏) 48명, 강릉함씨(江陵咸氏) 27명, 김해허씨(金海許氏) 46명, 연주현씨(延州玄氏) 50명, 장수황씨 32명, 창원황씨 31명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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