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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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川里靑松沈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하덕천마을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 |
성격 | 집성촌 |
가구수 | 62가구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있는 청송 심씨 집성촌.
[개설]
덕천리 청송심씨 집성촌은 덕천리 덕천마을에 있는 청송심씨 세거지이다. 청송심씨는 경상북도 청송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이다. 청송심씨의 시조는 심홍부(沈洪孚)로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위위시승(文林郞衛尉寺丞)을 역임하였다. 4세손 심덕부(沈德符)는 고려 충숙왕 때 왜구의 침입을 물리치고, 조선 개국공신으로서 청성부원군(靑城府院君)에 봉해진 후 청성충의백(靑城忠義伯)에 진봉되어, 후손들이 세계를 이어오면서 세 명의 왕후와 네 명의 부마를 배출한 조선의 세도가문이 되었다.
반면 심덕부의 아우 심원부(沈元符)는 고려 말에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냈으며, 새 왕조의 벼슬을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절의를 지켰다. 심원부의 후손들도 유훈을 받들어 선훈불사(先訓不仕)라 하여 대대로 벼슬을 멀리하였다. 덕천마을은 심원부의 후손인 청송심씨 향파(鄕派)가 약 600년간 뿌리내리며 살아가고 있는 곳으로, 청송 심씨의 대표적인 세거지이다.
[명칭 유래]
덕천리는 신흥천의 다른 이름인 덕천(德川)에서 유래하였다. 옛날에는 마을이 위쪽에 있다고 하여 상덕천이라고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덕천리의 청송심씨 입향조는 심흥부의 4세손 악은(岳隱) 심원부이다. 심원부는 고려의 충신이며 두문동 72현의 한 명이다. 심원부는 선훈불사(先訓不仕)란 유훈을 남겨, 심원부의 후손들은 대대로 벼슬을 지내지 않았다. 조선 영조 때는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덕천리에 이거하여 청송 송소 고택(靑松松韶古宅)을 지었다.
[자연환경]
덕천리 동쪽으로는 가풀재를 사이로 하여 청송읍 덕리, 금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서쪽으로는 지경리, 남쪽은 신흥리, 북쪽은 중평리, 관리와 접하고 있다. 덕천을 따라 덕천리, 상덕천, 이사리, 고이사리 등 4개의 자연마을로 되어 있다.
[현황]
2017년 현재 마을의 가구 수는 약 65호이며, 그중 청송심씨는 62가구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청송심씨가 72가구였으며, 1992년에는 청송심씨가 67가구였던 것을 고려하면, 덕천1리는 청송심씨 세거지로서의 성격을 잘 보존하고 있다. 덕천1리에서는 한식과 중구절에 시조 묘소에서 시사와 향사를 지내며, 음력 3월 25일에는 경의재(景義齋)에서 악은공 심원부의 향사를 지낸다. 덕천1리에는 경의재를 비롯하여 청송심씨 찰방공파 종택, 청송 송소 고택 등 청송심씨 문중의 유적이 다수 존재한다.
청송심씨 문중의 여러 고택이 있는 덕천리에서는 참소슬마을이란 이름으로 청송 송소 고택, 청송심씨 찰방공 종택 등 고택을 활용한 고택체험 및 홈스테이와 천연염색, 부자흙 훔치기, 청사초롱행렬체험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며, 청송심씨 집안의 내림음식을 바탕으로 청송군과 협력하여 심부자밥상 식단을 개발하여 방문객에게 제공하고 있다. 청송 덕천마을은 2010년 12월에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