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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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中坪里平山申氏集姓村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상훈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중평리에 있는 평산 신씨 판사공파 집성촌.
[개설]
중평리 평산신씨 집성촌은 중평리 중들마을에 있는 평산신씨 세거지이다. 평산신씨는 황해도 평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申崇謙)이다. 평산신씨 영해파(寧海派)는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의 13세손 신현(申賢)이 영해군(寧海君)으로 봉해짐에 따라 ‘영해신씨’로 분관하였다. 1960년, 영해신씨에서 평산신씨로 본관을 변경하고, 평산신씨 대동보규에 의거하여 15세손 신득청(申得淸)을 분파조(分派祖)로 하는 판사공파(判事公派)로 분파하였다.
1464년에는 신숭겸의 18세손인 판사공파 풍호(風乎) 신지(申祉)가 진보면 합강리에 입향하였다. 신지의 9세손 신한태(申漢泰)는 진보면 합강리에서 파천면 중평리로 이거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 신한태의 자손이 판사공파 진보종파(眞寶宗派)이다. 진보면 합강리 일대에 잔류한 평산신씨를 진보파(眞寶派)라고 부른다. 신지의 5세손 우헌(寓軒) 신연(申演)은 안덕에 이거하여 청송파(靑松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후손들은 안덕면 복리와 지소리 등에 세거하고 있다. 신지의 7세손 성천(聲川) 신전(申𥴈)은 합강 서편으로 분가하여 서파(西派)의 파조가 되었으며, 그 후손들은 신촌리와 부곡리 등에 산거(散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청송 지역에는 평산신씨 25세손 신종위(申從渭)를 파조로 하는 어천파(魚川派)가 있다.
[명칭 유래]
청송과 진보 중간에 있는 들이라 하여 중평(中平)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평산신씨 판사공파 청송 입향조 풍호 신지의 9세손 신한태와 그의 아들 둔파(遯坡) 신숙(申璹)이 18세기 초에 진보면 합강리에서 파천면 중평리로 이거하였다. 종손인 신한태는 중평리에 영해신씨[현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을 지었으며, 신한태의 후손들이 현재까지 중평리에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19세기 초에는 파천면 어천리에 있던 평산신씨 어천파의 종택이 화재로 소실되어 중평리로 이거하였다. 1914년에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병부리 일부를 병합하여 중평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중평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마을 앞에 작은 하천이 흐르고, 마을 입구의 솔숲이 장관을 이룬다. 중들, 밤시골, 고래비, 흰잎, 갱변, 아랫, 웃 등 7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다.
[현황]
중평리 중들마을이 융성했던 시기에는 250가구 이상이 거주하던 마을이었으나, 2017년 현재 가구 수는 80가구이며 약 60가구가 평산신씨이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영해신씨가 64가구였던 것과 비교하면, 평산신씨를 제외한 타 성씨가 감소한 것이다. 중평리에는 평산신씨 판사공파 종택과 평산신씨 어천파 종택, 서벽 고택, 사남 고택 등 평산신씨 문중의 건물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