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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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晙 |
영어공식명칭 | Kwon Jun |
이칭/별칭 | 경인(景寅),송만(松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59년 - 권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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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권준 의병진 참여 |
추모 시기/일시 | 1863년 - 권준을 추모하는 송만정 건립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592년~1598년 - 임진왜란 |
출생지 | 진보현 광덕리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
거주|이주지 | 송만정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광덕리 354번지 |
활동지 | 진보현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
묘소 |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목계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군자감판관 |
[정의]
조선 후기 진보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경인(景寅), 호는 송만(松巒). 할아버지는 한송(寒松) 권응희(權應禧)[1485~1573]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할머니는 부위(副尉) 백원형(白元亨)의 딸 숙부인(淑夫人) 진안백씨(眞安白氏)이다. 아버지는 귀암(龜巖) 권덕조(權德操)[1507~1594]로 충정공(忠定公) 권벌(權橃)에게 수학하였으며 학행으로 판관(判官)에 임명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乙巳士禍) 당시 낙향한 후 진보에 은거(隱居)하였다. 어머니는 생원(生員) 정문함(鄭聞咸)의 딸 봉화정씨(奉化鄭氏)이다.
권준은 3남 1녀의 막내 아들로서 큰형은 장사랑(將仕郎) 권서(權曙)이며, 중형은 봉사(奉事) 권해(權晐)이다. 사위는 판관(判官) 신경제(申經濟)로 영해인(寧海人)이다. 권준의 부인은 신응위(申應渭)의 딸인 숙부인(淑夫人) 평산신씨(平山申氏)[1557~1656]로 100세를 향수(享壽)하니 인조 때 사찬(賜饌)을 받고, 고을이 조세를 탕감받는 복호(復戶)을 입었다. 권준은 평산신씨 사이에 자식이 없어서 중형인 권해의 둘째 아들인 권지선(權止善)을 양자로 들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효종이 사찬(賜饌)하였고, 사적이 읍지(邑誌)에 올랐다. 이로 인해 가선대부(嘉善大夫)를 제수받았다.
[활동 사항]
권준(權晙)[1559~?]은 1559년(명종 14)에 태어났다. 항상 지극한 효성으로 아버지 권덕조가 88세로 사망할 때까지 항상 공경하고 외경하는 마음으로 섬겼다. 또한 형제간에도 우애가 두터워서, 늘 한상에서 밥을 먹고 한이불에 잠을 자며 가까이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아버지 권덕조의 명을 받들어 곽재우(郭再祐) 장군의 의병진에 참가해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지켰다. 당시 훌륭한 전략을 세워 여러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군자감판관(軍資監判官)을 역임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송강리 목계에 묘소가 있다.
[상훈과 추모]
1863년(철종 14) 후손들이 권준을 추모하기 위하여 송만정(松巒亭)을 건립하였다. 권준의 묘갈명은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가 지었는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송만정을 건립한 시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