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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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第一線同盟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남석 |
설립 시기/일시 | 1925년 - 제일선 동맹 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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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시기/일시 | 1927년 4월 - 제일선 동맹 해체 |
최초 설립지 | 충청남도 당진시 |
성격 | 청년 운동 단체 |
설립자 | 임종만|주흔규|김재한|이원태 |
[정의]
1925년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설립된 청년 단체.
[개설]
충청남도 당진 지역의 신합 청년회 운동가들은 1925년경 충청도 전체를 대표하는 사상단체를 만들기로 하였다. 그 결과, ‘제일선 동맹(第一線同盟)’을 대전에서 창립하였다. 제일선 동맹은 각 지역을 이동하며 매월 월례회를 개최하고 각 지역 청년들의 사상을 교육하며 청년 운동을 지도하였다. 하지만 1925년 12월에 일본 경찰의 억압으로 활동이 중지되었고, 1927년 4월 해체되었다.
[설립 배경]
신합 청년회는 1924년에 결성된 당진 지역의 혁신 청년 단체였다. 이들은 1925년 충청남북도를 연결하는 청년 단체의 연합회를 구축하여 충청 청년 대회를 개최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일본 경찰의 억압과 집회 금지로 끝내 불발되고 말았다. 이에 신합 청년회에서는 대규모 청년 대회보다 소규모의 사상단체를 조직하여 이들로 하여금 각 지역의 청년 단체를 순회하며 지도하고자 하였다.
[변천]
제일선 동맹은 1925년 3월 대전에서 임종만(林鍾萬)·주흔규(朱昕奎)·김재한(金在翰)·이원태(李源泰) 외 2인을 창립 위원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1925년 12월 발표한 강령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집회가 금지되자 해금(解禁)하기 위해 수차례 교섭을 하였으나 1927년이 되어서야 해금되었다. 이후에도 계속된 경찰의 감시와 집회의 강제 해산 등 탄압으로 1927년 4월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제일선 동맹은 서울 청년회 계열로 충청 지역을 포괄하는 도 단위의 사상 단체였다. 이곳에서는 사회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전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으며, 지역 사회 운동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또한 대중 단체의 조직 및 대중 운동을 지도하였다.
제일선 동맹은 충청남북도의 유일한 사상단체로서 매월 월례회를 각지로 옮겨 다니며 개최하였다. 특히 1925년 6월 14일에는 제3회 월례회를 강경에서 개최하면서 기관지인 『제일선(第一線)』에 관한 건, 조선 사회 운동 방침에 관한 건, 도내 각 단체 상황 조사에 관한 건 등을 토의하고 형평 운동과 아시아의 정세 등에 관한 연설을 하는 등 사상 교육을 강화하고 회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알려진 강령으로는 1925년 강령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집회가 금지되자 해금하기 위해 변경한 강령이 있다. 그 내용은 "하나(一), 아등(我等)은 무산 계급 운동의 원리 원칙을 연구함", "하나(一), 아등은 무산 계급 운동의 실제적 이익을 위해 노력함"이다.
[결과]
제일선 동맹은 1925년 12월, 보령군 웅천에서 열린 월례회를 기점으로 경찰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또한 강령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의해 집회 금지를 당하였다. 이후 제일선 동맹은 경찰의 감시와 집회의 강제 해산 등 탄압으로 1927년 4월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의의와 평가]
신합 청년회가 추진하여 결성된 제일선 동맹은 충청남도 지역의 혁신적 사상단체였다. 이들은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무산 계급의 의식 계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민족주의 계열도 참여하였지만, 사회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