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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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合靑年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남석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당진 지역에 조직된 청년 단체.
[개설]
신합청년회(新合靑年會)는 1924년 3월,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면에서 결성되었다. 단체의 명칭은 신평면과 합덕면의 줄임말로 추정되며, 회원은 신평면·합덕면·우강면 지역에서 활동하던 농민 운동가들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지역 유지 중심의 청년 운동의 한계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하였고, 전국적인 청년 단체와 연결하여 조직적이고 치열한 항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이념적 기반은 사회주의 사상이었다. 하지만 신합청년회는 일제 경찰의 끊임없는 간섭과 억압에 의하여 1930년대 초 해체되고 말았다.
[설립 목적]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합덕면·우강면 지역은 우평·강문 평야[우강 평야]라고 부른다. 넓게는 예당평야에 속한다. 이 지역은 서울에 가까운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재경 지주의 소유지가 대부분이었다. 지주들은 마름이라는 중간 관리인을 이용해 고율 소작료와 소작권 박탈을 무기로 소작 농민을 통제하고 억압하였다. 신합 청년회는 이와 같은 소작 농민을 규합하고 소작 쟁의를 지도하며 농민들에게 근대 의식을 심어 주기 위해 결성되었다.
[조직과 회원 현황]
신합청년회는 1924년 3월에 합덕면에서 결성되었다. 창립 시 회원은 14명이었는데, 1929년에는 33명으로 확대되었다. 창립 시 회장과 회원 명단은 확인되지 않으나, 1929년의 대표자인 상무 위원은 배기영(裵基英)이었다. 신합청년회의 회원은 이 지역의 운동가를 망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활동 상황을 고려할 때, 우강면의 운동가는 임종만(林鍾萬)·정학원(鄭鶴源)·성낙훈(成樂薰), 합덕면은 정형택(鄭亨澤)·조이환(曺利煥), 신평면은 배기영·심종관(沈鍾觀) 등이 참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무 위원인 배기영은 신평면과 순성면에서 활동하였다. 배기영은 1898년 신평면 한정리에서 태어났다. 선린 상업 학교 출신으로 1920년 신평면협의원, 1922년 신평 공립 보통학교[현 신평 초등학교] 학무 위원, 1923년 신평면협의원에 재선되었다. 배기영은 1924년 당진 소작인 조합 창립에 앞장섰고 창립 당시 서기가 되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조선 노농 총동맹과 연대하여 소작 운동에 주력하였다. 배기영은 1929년 신간회 당진 지회에도 참여하여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해방 직후 당진군 인민 위원장을 맡았다가 옥고를 치렀고 한국 전쟁 시기에 피살되었다. 또한 임종만과 정학원도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다가 옥고를 치렀고 1933년 출옥하였으나 고문의 여독으로 모두 사망하였다. 결국 신합청년회의 사상적 배경은 사회주의 사상이라 하겠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신합청년회의 주요 활동으로는 첫째, 우평·강문 평야의 소작 농민의 소작 쟁의를 지도하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1924년 당진 소작 조합을 합덕에서 창립하여 소작 농민을 규합하였고, 재경 지주와 악질 마름의 부당 행위를 조사하였다. 그리고 소작 쟁의를 지도하였다. 둘째, 당진 지역 청년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하여 충남 지방 청년 대회를 개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간섭으로 무산되자, 이들은 충남 지역 사상 단체인 ‘제일선 동맹(第一線同盟)’을 조직하고 사상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셋째, 우강과 합덕 지역의 어린이를 교육하고자 야학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였다. 특히 이들은 농민의 문맹 퇴치뿐만 아니라 봉건 의식을 타파하고 새로운 지식과 사상을 보급하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우강면의 야학 운동은 1929년 범천 공립 보통학교[현 우강 초등학교]가 설립되는 배경이 되었다.
[의의와 평가]
신합청년회는 관료 유지 중심의 실력 양성 운동에서 탈피하여 적극적인 민중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던 혁신 청년 단체였다. 우강·합덕 지역의 소작 농민은 신합청년회 회원들의 지도 아래 지주와 마름에 대항하여 농민의 권익을 찾는 항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 또한 신합청년회는 당진 지역 청년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여 1927년 신간회 당진 지회 창립과 1928년 당진 청년 동맹 창립의 구심체가 되었다. 나아가 충남 지역 청년을 규합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합청년회는 당진 지역에서 출발하여 충남 청년 운동에서도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