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1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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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A Baby's First Birthday |
이칭/별칭 | 첫돌,돌잔치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강순희 |
[정의]
충청남도 당진에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해가 되는 날에 축하하는 풍속.
[개설]
첫돌은 아이가 태어난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변변한 의술이 없던 시절, 아기가 태어나서 1년을 무사히 지냈다는 것은 너무나 대견하고 경사스러운 일이었기에 돌잔치를 베풀어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해 주고 기쁨을 나누었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 돌잔치는 『국조보감(國朝寶鑑)』에 기록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정조 15년 6월조에 궁중에서 원자에 대한 잔치를 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중국의 문헌인 『합벽사류(合壁事類)』, 『안씨가훈(顔氏家訓)』, 『풍조(風操)』 등에도 관련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돌잔치가 우리나라만의 풍속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일반적으로 뷔페 식당을 빌려 친가와 외가의 가족은 물론 직장 동료와 지인들을 초청하여 돌잔치를 여는 형태로 변해 가고 있다.
[절차]
충청남도 당진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서 만 1년이 되는 첫돌을 맞는 날 아침이면 제일 먼저 삼신상을 차렸다. 아기를 무탈하게 무럭무럭 키워 준 삼신할머니에게 상을 차려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흰쌀밥 세 그릇, 미역국 세 그릇을 상에 올린 후 축문을 읽는다. 그런 다음 일가친척들과 동네 사람들을 불러 축복을 기원하며 잔치를 베푼다. 돌을 맞은 아이를 그날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돌상을 차린 후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축하하는 가운데 돌잡이라 하여 아이에게 여러 물건 중 하나를 잡게 해 본다. 이는 아이의 장래를 점쳐 보는 일종의 주술이기도 하고 아이에 대한 주변의 기대와 관심을 집중하며 축복하는 자리이기도하다. 아이의 복장은 남자아이는 색동저고리, 풍차바지에 복건을 씌우며, 여아에게는 색동저고리, 다홍치마에 조바위를 씌워 성장을 시키고 돌상 앞에 앉힌다. 돌상에는 음식과 각종 물건을 차려 놓는데 남아와 여아가 약간 다르다. 상에는 백설기, 수수팥 단지, 쌀, 국수, 대추, 과일, 돈, 종이, 붓과 먹 등을 놓고, 남아의 상에는 천자문, 활, 화살을 첨가하고 여아의 상에는 천자문 대신 국문을 놓고 활과 화살 대신 색지, 실패, 자 등 모두 유래가 있는 물건들을 놓는다. 이때 아기가 책을 먼저 집으면 글을 잘하게 되고, 활을 잡으면 장군감이라고 하고, 자를 잡는 아이는 바느질을 잘하게 된다고 믿었다. 쌀은 부자가 되고 대추는 자손이 번성한다 하였다. 돌날 손님상에는 흰밥에 미역국과 나물, 구이, 자반, 김치, 조치 등 반상을 차려서 대접한다. 돌에는 백일 때와 마찬가지로 친척과 이웃에 떡을 돌리며 떡을 받으면 답례로 실, 돈, 반지, 수저 등으로 아기의 부귀와 장수를 빌었다. 떡은 백설기와 수수팥 단지, 인절미를 주는데, 백설기는 신성함과 정결함을 뜻하며 수수팥 단지는 액을 물리친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돌을 맞은 아이들의 부모들은 미리 밥그릇과 국그릇, 수저 등을 준비하여 돌상을 차릴 때에 쓴다. 이는 앞으로 세상을 살아갈 때에 영위해야 할 식생활의 기본 수단의 준비라는 뜻이 있다. 예전의 돌잔치가 아이가 무사히 첫돌을 맞게 된 것을 축하하고 돌잡이를 통해 아이의 장래를 예측해 보는 의미였다면, 지금의 돌잔치는 형태가 다소 변하고 있다. 축하하는 의미는 같지만 돌잔치를 행하는 장소가 집이 아니라 뷔페식당 등으로 바뀌었고, 진행 방식 역시 축제처럼 사회자가 돌잡이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돌잡이 상에 오르는 물건으로 컴퓨터 마우스나 마이크, 골프공, 판사봉 등이 놓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