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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0499
한자 權尙夏
이칭/별칭 치도(致道),수암(遂菴),한수재(寒水齋),문순(文純)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민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41년연표보기 - 권상하 생
활동 시기/일시 1662년 - 권상하 증광시 3등 64위
몰년 시기/일시 1721년연표보기 - 권상하 졸
추모 시기/일시 1726년 - 권상하 문순(文純) 시호 받음
추모 시기/일시 1727년 - 권상하 충주 회암 서원 배향
출생지 권상하 출생지 -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거주|이주지 권상하 은거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묘소|단소 권상하 묘소 -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
사당|배향지 누암 서원 -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성격 문신|유학자
성별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 우의정

[정의]

조선 후기 도봉 서원 각석군에 글씨를 남긴 문신이자 유학자.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庵)·한수재(寒水齋). 고조할아버지는 활인서 별제를 지낸 권대성(權大成)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오수도 찰방을 지낸 권주(權霔)이다. 할아버지는 선산 부사를 지낸 권성원(權聖源)인데, 율곡(栗谷) 이이(李珥)우계(牛溪) 성혼(成渾)을 사우(祠宇)[사당]에 모시자는 논의를 이끌어 사림의 칭송을 받았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서인 계열에 속하였다. 아버지는 사헌부 집의·사헌부 장령·사헌부 지평 등의 언관직을 거치면서 “직간(直諫)을 잘하는 신하”라는 평을 얻은 권격(權格)이다. 동생은 권상유(權尙游)이다.

[활동 사항]

권상하(權尙夏)[1641~1721]는 송준길(宋浚吉)·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이단하(李端夏)·박세채(朴世采)·김창협 등과 교유한 호론 계열의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한원진(韓元震) 등 ‘강문 팔학사(江門八學士)’를 길러 냈다. 일찍이 저명한 산림(山林)[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숨어 지내는 선비]으로 여러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아 대사헌·우의정 등에 제수되었지만 나아가지 않고 황강촌[현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몰두하였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사사되는 송시열에게 달려가 의복과 서적을 전수받고 그의 적통 제자임을 자부하며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 만동묘(萬東廟)와 대보단(大報壇)을 세우기도 하였다.

권상하의 문집인 『한수재집(寒水齋集)』 22권의 「소광정기(昭曠亭記)」에 따르면 권상하는 친구 윤봉구(尹鳳九)와 함께 도봉 서원을 찾았는데, 이곳이 당시 이름난 명승지일 뿐만 아니라 스승인 송시열이 배향된 곳이었기 때문이다. 서원 강당에서 서쪽으로 100보쯤 가면 시내 위에 무우대(舞雩臺)와 그 동쪽에 영귀문(詠歸門)이 있고, 그 근처에 송시열송준길의 글씨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여름 큰비 때문에 절벽이 갈라지고 암석이 빠져 떠내려가서, 무우대와 영귀문은 주춧돌이 뽑히고 송시열송준길의 필적도 망가지게 되었다.

이에 권상하윤봉구와 함께 원사(院事)를 주관하여 침류당(枕流堂) 남쪽 빈 땅에 영귀문을 세우고, 조금 아래 시냇가의 깎아지른 절벽 꼭대기를 편편하게 닦아서 무우대를 지었다. 원래 터가 파여서 못쓰게 되자 홍수에도 안전한 곳으로 터를 옮겨 지은 것이다. 무우대 아래에는 두어 길쯤 되는 폭포가 있고, 폭포 밑 오목한 암석 바닥에는 물이 돌아들어 담(潭)을 이루었으며, 담 남쪽에는 50~60인이 앉을 만한 흰 암석이 있다. 권상하는 이 암석에 두 선생이 옛날에 쓴 필적의 진본을 새기고 ‘무우대’라는 세 글자 친필을 그 곁에 새겼는데, 이 글이 새겨진 바위는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다.

[학문과 저술]

권상하송시열의 ‘사문지적전(師門之嫡傳)’으로 불린 만큼 서인 노론 학파의 정통성을 가졌음을 자부한 인물이었다. 그의 제자들 중 이간(李柬)한원진은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의 여부를 두고 논쟁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호락논쟁(湖洛論爭)이다. 권상하한원진의 입장에 서서 인물성상이론(人物性相異論)을 지지하였다. 권상하는 평소에 저술을 즐기지 않아 전하는 저서는 많지 않지만, 서간과 짧은 글들을 모아 놓은 문집인 『한수재집』과 『삼서집의(三書輯疑)』가 있다.

[묘소]

묘는 충청북도 충주시 동량면 손동리 음양지 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권상하가 병으로 사망하자 조정에서 조회를 폐하고 치제하였지만, 조정 내 붕당 간의 역학 관계에 따라 관작의 추탈과 회복을 반복하다가 1725년(영조 1) 문순(文純) 시호가 내려졌다. 1727년(영조 3) 충주 누암 서원(樓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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