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100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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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鼎鉉 |
영어음역 | Gim Jeonghyeon |
이칭/별칭 | 중길(重吉),추곡(秋谷),송림(松林)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종대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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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 |
성별 | 남 |
생년 | 1591년 |
몰년 | 1675년 |
본관 | 경주 |
대표관직 | 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이며 지천서원 배향 인물.
[가계]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길(重吉), 호는 추곡(秋谷), 자호는 송림(松林).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의 고손이다. 할아버지는 원종공신 김선경(金善慶)이며 아버지는 생원 김순(金峋)이다. 어머니는 청주한씨로 한광윤(韓匡胤)의 딸이며, 부인은 나주정씨로 정언규(丁彦珪)의 딸이다. 아들은 김방(金滂), 김만(金滿), 김관(金灌), 김황(金潢), 김온(金薀), 김한(金漢)이다.
[활동사항]
김정현(金鼎鉉)[1591~1675]은 타고난 자질이 특출하여 약관에 이르기 전에 명성이 퍼져, 1613년(광해 5)에 증광생원시에 합격하자 외숙 한옥(韓玉)이 북당 한찬남(韓纘男)과 재종질로서 김정현을 유혹했으나 당시(唐詩)를 인용하여 거절하였다. 과장(科場)에도 나가지 않고,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송곡리 향리에서 두문불출하다가, 1630년(인조 8)에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1658년(효종 9) 강화경력(江華經歷)으로 있을 때 유수 민응협(閔應協)이 군량미를 마음대로 써서, 음죽(陰竹)에 유배되었다가, 문천·영광·회양·고령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부모를 봉양하다가 통례원통례(通禮院通禮)를 지내고 시골로 돌아왔다가, 우로(優老) 은전으로 첨지중추부사·동지중추부사, 1675년(숙종 1) 대사헌에 의망되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승진하였다.
효성스럽고 우애 있으며 청렴결백한 지조를 지켜, 혼란한 조정에 종적을 더럽히지 않았으며, 벼슬길에서보다 시골에서 지내며 깨끗하여 누가 없었다. 집에는 벽만 있고, 한 두 섬의 곡식도 자주 떨어졌으나 태연하였고, 기상이 청백 고결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분의 고절(苦節)은 나약한 자를 서게 하고, 탐욕스러운 자를 청렴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학문과 사상]
1665년(현종 6) 충청북도 음성군 삼성면에 있는 백운산사(白雲山寺)에서 백향산(白香山) 고사를 인용하여 ‘향산칠십회(香山七十會)’를 만들었다. 풍기군수 정증(鄭䎖)이 「칠십회시서문」에 ‘송림 김선생은 군자다운 사람이고, 대부 중에 어진 분이다. 과거에 급제한 후 세 조정에 벼슬하였고, 훌륭한 재능을 조금 발휘하자 다섯 고을에 구비가 전해졌네.’라 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숙종이 제문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치제하였으며, 1740년(영조 16) 음성군 지천서원(知川書院)에 배향되었고, 안정복이 행장을 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