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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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川里-開寧面- |
영어음역 | Gwangcheon-ri[Gaeryeong-mye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동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광한(廣漢)의 ‘광(廣)’자와 횡천(橫川)의 ‘천(川)’자를 따서 광천동(廣川洞)이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부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광한·횡천이 통합되어 김천군 개령면 광천동으로 개편되었고, 1949년 금릉군 개령면 광천동으로 개칭하였다. 1971년 광한이 광천1동, 횡천이 광천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광천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개령면 광천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감문산 자락인 동고산[140m]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쪽으로 감천이 흐른다. 드넓은 평야 지대가 발달하였다.
[현황]
광천리는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4.81㎢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40세대에 304명(남자 142명, 여자 16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광천1리·광천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순흥 안씨(順興安氏)·김녕 김씨(金寧金氏)·진주 하씨(晋州河氏) 집성촌이다. 국도 59호선과 지방도 997호선이 지난다. 삼한 시대 소국인 감문국의 도읍에 가까워 예부터 전략적인 요충지로 알려져 왔다. 영남을 대표하는 풍물인 빗내농악의 발상지로 2003년 마을 어귀에 빗내농악전수관을 건립하여 명실 공히 농악의 성지(聖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양천역 터, 순흥 안씨 재실인 심호재(心湖齋) 등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광한, 빗내 등이 있다. 광한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순흥 안씨 안연(安璉)이 난을 피해 경기도 광주에서 이주해 와 살면서 일대에 들과 하천이 광활하다 하여 광한(廣漢)이라 하였다고도 하고 광원(廣原)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특히 광한은 김천 최대의 순흥 안씨 집성촌으로 유명하여 전체 65호 가운데 54호가 순흥 안씨이다.
마을 뒤 동고산은 순흥 안씨 재실인 심호재와 감문국 별궁 터로 전하는 내황골[內皇谷]을 품은 산으로 감문국 시대에 나라에 변란이 있으면 산 정상에서 북을 쳐서 알렸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1914년 개령면으로 통합되기 전 개령현 서면과 부곡면으로 나뉘어져 있을 때는 부곡면 소재지였다.
빗내는 사달산(四達山) 자락에 자리 잡은 마을로 광한·남전과 이웃하고 외현천을 경계로 감문면 태촌리와 이웃한다. 임진왜란 후인 1600년대 초에 김녕 김씨 김응래(金應來)가 농소면 연명리에서 이거한 후 대대로 집성을 이루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감천이 마을에서 보았을 때 가로로 비켜서 흐른다 하여 횡천이라 하였고 우리말로 비스듬히 흐르는 내라는 뜻에서 빗내라 하였다. 원래 본동인 큰마와 마을 앞 빗내농악전수관 일대 옛 도로변 주막이 있었던 주막걸, 새마, 중마 등 네 마을이 있었는데 점차 그 사이에 집이 들어서면서 한 마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