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5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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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部里古墳群 |
영어음역 | Seobu-ri Gobungun |
영어의미역 | Tumuli of Seobu-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서부리마을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배성혁 |
관련 사항 | 191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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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 5~6세기 |
소재지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 서부리마을 |
성격 | 고분군 |
양식 |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 石室墳]|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개설]
서부리 고분군은 감문소국(甘文小國)의 고지(故地)로 알려져 있는 개령면 중심지에 위치한 삼국 시대 고분군의 한 부분에 속한다. 현재 확인된 고분의 구조는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지만 구릉 위쪽 범위에는 규모가 큰 고분이 포함된 판석조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고분의 봉분은 거의 유실되어 있으나 현 지표 아래에는 내부 구조가 적지 않게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서부리 고분군은 김천역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7㎞ 떨어져 있으며, 감천과 북편의 지류인 아천(牙川)에서는 각각 1㎞가량 떨어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분과 토기편의 산포 상태로 보아 비교적 나지막한 능선과 사면에 고분군이 넓게 형성되어 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서부리 고분군과 동부리 고분군 및 양천리 고분군은 상호 인접해 있어 세분된 동리의 행정 구역만 다를 뿐 하나의 큰 고분군에 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서부리 고분군 중에서 발굴 조사된 고분은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인 1917년 지표 조사 당시 내부가 노출된 구덩식 돌방무덤 1기와 장릉(獐陵) 혹은 장부인릉(獐夫人陵)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분에 대한 지표 조사 기록이 있다. 구덩식 돌방무덤은 현재 유실되었는데, 당시에는 서부리마을에서 김천 시내로 나갈 수 있는 서쪽의 언덕길에 있었다고 한다. 장릉은 현재 삼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북서북 쪽으로 약 150m 떨어져 있으며 천정석 윗면의 평면돌만 남아 있다.
[형태]
1917년 지표 조사 때 확인된 고분은 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당시의 간략한 도면과 설명만 남아 있다. 유입된 토사가 쌓여 바닥 상태는 알 수 없으나 벽체는 벽돌 모양의 비교적 균등한 크기와 모양으로 다듬은 할석으로 축조하였다고 한다. 벽석 표면에는 회미장이 되어 있었으며, 현실과 연도의 천정부는 판석으로 덮었다.
현실의 계측치는 전후 방향 길이 1.48m, 좌우 방향 너비 3.33m, 높이 1.39m이다. 이 현실로 통하도록 오른쪽에 ‘ㄱ’자 형처럼 달아낸 너비 0.88㎝, 길이 1.21m의 연도를 갖추었다. 현실의 규모로 보면 평면적이 4.92㎡로 일반적인 예에 해당하지만 횡장방형 현실 구조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한다. 삼국 시대 굴식 석실[橫穴式石室]의 구조 형태에서 이 석실의 이례적인 특징은 세 가지이다.
길이에 비해 너비가 두 배 이상인 횡장방형(橫長方形) 현실, 연도 천정석 윗면에 바로 현실 천정석을 올린 축조 상태, 그리고 수직 벽체가 그것이다. 한편 서부리 고분군에는 이와 같은 이례적인 구덩식 돌방무덤도 있지만 동부리 고분군에서 드러나 있는 것과 같은 판석조 굴식 돌방무덤과 구덩식 돌덧널무덤도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 서부리 고분군의 위치로 추정되는 범위는 거의 대부분 구릉 지대로 소나무와 참나무 및 기타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일부 사면에는 밭으로 경작되거나 휴경지 또는 민묘가 조성되어 있으며, 간간히 작은 토기편들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서부리 고분군은 인접한 동부리 고분군 및 양천리 고분군과 함께 김천 지역의 중요고분군으로서 감문소국의 주고분군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고분군의 주인공들은 삼국 시대 감천 하류권의 너른 충적지와 곡간 소평야지를 생산 기반으로 살았던 사람들일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