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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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雲夢 |
영어음역 | Na Unmong |
이칭/별칭 | 아실 |
분야 | 종교/기독교,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이근구 |
출생 | 1914년 1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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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940년 5월 |
활동 | 1945년 |
활동 | 1947년 |
활동 | 1955년 |
활동 | 1956년 |
활동 | 1960년 |
활동 | 1966년 |
활동 | 1974년 |
수학 | 1975년 |
활동 | 1979년 |
특기 사항 | 1980년 |
활동 | 1989년 |
수학 | 1992년 |
몰년 | 2009년 11월 26일 |
출생지 | 평안북도 박천군 동남면 매주리 |
성격 | 개신교 목사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용문산 기도원장|애향원 이사장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김천 용문산에서 성령 운동을 시작한 개신교 목사.
[활동 사항]
나운몽(羅雲夢)은 1914년 1월 7일[음력] 평안북도 박천군 동남면 맹주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나주, 호는 아실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제 강점기 김천으로 내려와 어모면 용문산에 적을 두고 도치량에서 문맹 퇴치 운동에 참여하고, 동민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민족 사상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1940년 5월 나운몽은 어모면 능치동 산274번지[현 능치리 산274번지] 일대 약 200정보에 애향숙(愛鄕塾)을 개설했다. 애향숙은 기독교 교파별로 신도들을 이주 수용했는데, 감리교 신자들은 애향촌에, 성결교 신자들은 믿음촌에, 장로교 신자들은 소망촌으로 구획하여 집단 주거지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그리고 3,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250평[826.45㎡] 규모의 예배당을 짓고 이곳에서 한꺼번에 각 교파 전원의 신자들이 연합 예배를 드리게 했다.
이후 나운몽은 애향숙 자리에 용문산기도원[1947년]을 세운 데 이어 고등성경학교[1955년], 기드온신학교[1956년], 용문산수도원[1960년]을 세웠다. 또 용문산 600m 정상에 기도단을 설치하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밤낮으로 한 사람씩 끊이지 않고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기도를 계속하게 했는데, 이는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1975년 미국 나성성서신학대학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2년 국제크리스찬대학교 성경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나운용 목사는 용문산기도원장, 용문산수도원장, 한국복음화운동본부장, 일동교회 운동본부장, 기드온신학교장, 대한예수교 오순절성경회감독, 만민교회 담임목사, 새별산교회 담임목사, 애향원 이사장, 『기독공보』·『농민성보』·주간 『복음신문』·월간 『신앙세계』 발행인 등을 역임했다.
[상훈과 추모]
1980년 세계설교자협의회 수훈공로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