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17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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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The Story of Life Told by the Jikjisa Station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덕전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정부매 |
[개설]
김천은 예부터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로 불릴만치 교통이 발달했다. 한반도 남부의 중앙이자 충청, 전라, 경상도가 만나는 지리적 이점은 삼국시대로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김천의 발전을 이끄는 동력원이 되었다. 따라서 김천은 전형적인 역촌(驛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시대로부터 남산동에 설치된 역참제도하에서의 김천역은 1895년 갑오경장 이후 우정국이 신설되면서 폐지된 후 김천 교통은1905년 준공된 경부선철도의 평화동 김천역으로 중심이 옮겨졌다.
김천시에는 경부선 철도와 경북선 철도가 동서·남북 두 축을 이루며 놓여 있다. 일제 강점 이후 김천시 경계 안에는 신암역·직지사역·김천역·대신역·아포역과 아천역·두원역 등이 개설 운행되어 사람과 물자의 분주한 움직임을 도왔다. 그러나 2010년 현재는 김천역과 아포역만이 여객 수송을 하는 보통역으로 남아 있고, 나머지 역들은 간이역(簡易驛)이 되거나 폐지되었다.
도로 교통이 발달하고 철도 교통을 대체하는 교통수단들이 등장함에 따라, 근대를 열었던 기차역은 점차 도시로 진입하는 주요한 통로의 역할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때로는 같은 자리에 간이역으로 남아 있어, 기차로 통학하고 인근 도시의 장(場)으로 향하던 그 시절을 추억하게 한다.
김천시에 자리해 온 기차역마다 김천 사람들의 사연과 추억들이 넘친다. 그 중 김천시 대항면 덕전리 세송마을 언덕 위에 위치한 직지사역은 역사(驛舍)의 외관을 유지하고 있는 김천의 대표적인 간이역이다. 2007년 이용객 감소로 여객 영업을 중단하고, 2010년 현재 역장 없이 역무원만 상주해 운전 취급만 하는 배차 간이역이 되었지만, 마을 주민은 물론이고 김천 사람을 만나 직지사역에 얽힌 추억 한 두 가지쯤 듣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세송마을 주민과 인근 마을 주민, 그리고 직지사역에 근무했던 역무원들이 전하는 옛 이야기 속에서 김천의 옛 모습 한 켠을 함께 추억해 보자.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적이던 직지사역 주변 풍경]
직지사역은 일제 강점기였던 1925년 세송 신호소로 출발했다. 1927년 보통역으로 승격되면서 인근에 신라 고찰 직지사(直指寺)가 있어 직지사역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역 이름으로만 보면 금세 직지사에 닿을 듯하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직지사로 오가던 길을 찾기는 수월치 않다.
역사(驛舍)를 뒤로 하고 언덕길을 따라 내려오던 중에 곽동식 씨[1955년생, 덕전3리 마을 이장]는 “바로 저 농로를 따라 직지사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 하며, 직지사 인근 마을 사람들이 [역이 번성할 때는] 줄서서 걸어 다니곤 했었지.”라며, 지서로 사용되었던 일본식 건물을 지나 직지교회 앞에서 멈춰서 왼편으로 마주하는 경지 사이의 좁은 농로(農路)를 가리켰다. 직지사 부근 대항면 운수리나 향천리 등지에 살면서 김천 시내로 통학하던 학생들도, 재배한 채소를 팔러 대전역 부근 번개시장까지 나가던 아낙네들도 바로 이 길을 지나 직지사역에서 기차를 탔다고 한다. 이 좁은 농로를 확인하고 나서야 직지사역과 직지사와의 관계를 이해할만 해졌다.
안진부 씨[1956년생, 추풍령역 역무원, 전 직지사역 역무원]는 직지사 인근 대항면 운수리가 고향이고, 직지사역에서 198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두 차례 근무했다. 그의 기억에도 철길을 따라 걸어와 세송터널을 지나 직지사역에서 기차를 타고 김천 시내로 통학하던 시절이 선명했다. 마을에 버스가 들어온 이후에도 더 싼 기차 요금에 한동안 계속 기차로 통학을 했다고 덧붙였다.
2010년 현재 직지사역에서 근무하는 이덕희 씨[1954년생]는 2009년까지도 역 바로 앞에서 가게를 운영했던 할머니에게서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남겨 두고 간 음식들로 한 달은 먹을거리 걱정을 안 해도 될 정도였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 기차에서 승객들이 구름떼처럼 내려와 주막거리에서 요기를 하기도 하고, 인근 마을 주민들은 떡을 이고 올라와 팔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 사이에 크고 작은 시비가 붙어 지서에서 순경이 쫓아오기도 하는 등 직지사역 앞 광장과 주막거리의 왁자지껄한 풍경은 대단했다고 한다.
[직지사역과 세송마을이 엮어 온 시간의 흔적들]
역사(驛舍) 입구에는 2005년 9월 18일 경부선 철도 개통 100주년을 기념해 대구 MBC에서 세운 시비가 놓여 있다. 박해수 시인의 이 시처럼 직지사역은 ‘나그네 새’로 남아 이곳을 찾는 지금의 나그네들에게 역사(驛舍)와 한 울타리를 이루는 세송마을의 일제 강점기는 물론이요, 조선 시대까지 시간을 넘나들며 그 시절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1927년 4월 1일에 건립된 직지사역사(直指寺驛舍)는 2004년 근대 문화유산으로 조사되었다. 대합실과 역무실, 숙직실, 창고로 이루어져 있는 단층 맞배집 형태를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직지사역사 앞에는 키 낮은 두 채의 가게가 역을 마주하고 있다. 한 곳은 자물쇠로 닫혀 있고, 다른 한 곳도 새로운 용도로 바뀔 채비를 하고 있는지 시멘트 포대가 쌓여 있다. 짚을 섞어 만든 흙집 점포 안을 보니 물건 진열대가 먼지를 품었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고, 기차를 놓친 사람들이 때때로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는 살림집 한 칸도 눈에 들어온다[2011년 4월 초 다시 찾아간 직지사역 앞에서 오른쪽 점포는 찾을 수 없었고, 그 자리는 밭으로 쓰이고 있었다.].
점포의 오른쪽으로 좁고 긴 대나무 숲길이 나있다. 마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이용했을 이 지름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로 세송마을회관 앞이다. 오른편에 있는 터널로 세송마을에서 수확한 포도를 가득 실은 트럭이 빠져나온다. 철로 건너편에 보이던 세송마을은 이 터널을 지나야 닿을 수 있다. 곽동식 씨는 일제 강점기에 마을 가운데로 철로가 부설되자 동선을 연결하기 위해 터널이 만들어 졌고, 1965년경에 터널 폭을 확장했다고 어릴 적 마을 어른들께 전해들은 얘기를 전한다.
붉은 벽돌로 아치형 천정을 이루고 있는 터널을 빠져나오자 조선 전기 의병장인 박이룡(朴以龍)[1533~1593]의 비각과 사당 학촌재(鶴村齋)가 시야에 들어온다. 김영진 씨[1937년생, 덕전3리 노인회장]는 충주 박씨 문중에서 매년 음력 10월 15일 묘사를 지낸 후 나누어 주던 떡을 얻어먹으려고 긴 줄을 서기도 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언덕길을 다시 오르니 낯선 가옥 경관이 펼쳐진다. 직지사역을 개설하면서 세운 부속 관사 건물이다. 철로변의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관사 건물에 거주하는 전경희 씨[1964년생, 덕전3리 세송마을 주민]는 더 위에 있는 관사에 살다가 지금 건물로 내려와 35년 정도 살고 있다. 살아 계셨으면 올해로 85세가 되셨을 그의 부친은 경부선 선로 작업도 했다고 한다.
본래 전통적인 일본식 가옥으로 외벽은 대나무를 엮어서 흙을 바르고, 내부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었다. 지금 가옥의 내부 구조는 거의 개조한 상태이고, 관사로 쓰였던 당시의 모습 중 지붕과 창틀, 나무벽 등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집[옛 관사]에 딸린 우물도 역시 일제 강점기부터 있던 것으로, 2007년 상수도가 놓이기 전까지 식수로 사용했고 물맛도 좋았다고 한다.
세송마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위쪽 관사 건물은 좀 더 견고해 보인다. 우물 축조 방법과 규모도 그렇다. 여기에서 세송마을을 내려다보니, 언덕 위에 자리한 직지사역과 옛 부속 관사, 마을 앞 언덕에 잔솔이 많아 세송(細松)이라 불려온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직지사역은 옛 시절을 추억하는 공간이 되어]
직지사역은 세송마을, 직지사와 직지사 인근 마을 주민들의 생활권을 엮어 주던 연결 고리였다. 지금도 김영진 씨의 친구들은 “옛날에 너희 동네가 최고였지……”라며, 직지사역 앞 광장과 주막거리에 모여 살아가는 얘기를 주고받던 시절이며 당시의 번화했던 이곳 모습을 떠올린다고 한다. 이제 직지사역 대합실은 기차를 기다리는 승객 하나 없는 텅 빈 공간이 되었지만, 품고 있는 옛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 소곤소곤 변신을 해 가고 있다. 역무원들이 가꾼 철도변 화분과 넝쿨, 역사(驛舍) 외벽에 그려진 벽화가 직지사역에서 옛 시절을 추억하려는 이들의 발걸음을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