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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2월 1일에 가족 구성원이 나이 수대로 마련한 송편을 먹는 풍속. 음력 이월 초하룻날 아침에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나이 수대로 송편을 마련하여 먹는다. 나이 수대로 마련한 떡이라 하여 나이떡이라 하였다. 집안에 어른이 계시면 어른의 나이만큼 떡을 해서 드리면 양이 많으므로, 떡의 크기를 작게 만들거나, 떡쌀을 담글 때 쌀을 숟가락으로 나이만큼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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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서민들이 지어 부르던 음담 성격의 노래. 공주 지역 사람들이 말하는 잡가는 일노래 속에서 음담이 들어 있는 모든 노래를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12잡가, 휘모리잡가, 서도잡가, 남도잡가 등을 지칭하는 노래의 제목이 아니다. 예를 들면 「각설이 타령」 중에 「운우지정 사설」이나 「첫날밤 타령」 가운데 「씹타령」, 「아리랑」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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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수리과에 속한 새. 몸길이는 수컷이 약 32㎝, 암컷이 약 39㎝이다. 암컷이 수컷보다 약간 크며 날개는 작고 꼬리는 비교적 길다. 수컷의 겨울깃은 앞 이마와 가느다란 눈썹선의 경우 회백색이고 윗부분은 회청색이며, 아랫부분은 흰색 바탕에 등갈색의 가로무늬가 분포한다. 머리 꼭대기는 매우 진하며 허리와 위 꼬리덮깃은 엷은 색을 띤다. 눈 앞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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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 전해지는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민요. 공주시에는 타령조의 많은 노래가 전해 내려오며, 부르는 양식은 넋두리형·창부타령형·노랫가락형·일노래형 등 다양하다. 노래 제목이 「신세 타령」인 것도 있다. 「날가라네 날가라네」는 신세 타령형과 창부 타령형의 두 가지가 불리는데, 같은 노래면서도 곡이 많이 달라서 다른 노래로 인식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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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하신리에 전해지는 여인들만 있는 장소에서 부르던 부녀자들의 민요. 공주시 일원의 부녀자들 노래를 기능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베틀가·마전질소리 등의 일노래, 창부 타령이나 아리랑 등의 놀이소리, 시집살이 노래 등 한탄 섞인 일상의 노래로 나누어볼 수 있다. 「남매노래」는 이러한 소리 가운데 남자들이 듣는 곳에서는 좀처럼 부르지 않았던 부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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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오층 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해오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낮은 단층 기단에 5층 탑신으로 만들었으나 현재 4층까지만 남아 있다. 지대석 위에 올린 기단에는 면석과 우주석을 각각 별도의 석재로 만들어 세웠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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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계룡산 청량사 폐사지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칠층석탑. 건립 연혁과 관련된 기록이나 변천 내용이 자세히 전하지 않는다. 전체적인 탑의 조형으로 보아 통일신라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50년대에 무너진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 계룡산 동학사 뒤편 비로봉 아래 산 중턱에 공주 청량사지 오층 석탑과 남북으로 나란히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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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남매탑의 조성 이야기. 「남매탑 전설」은 보은을 주제로 한 석탑조성 관련 유래담이다. 공주 지역의 보은 주제의 전설은 「노루목 전설」(우성면), 「비학실의 농부」(장기면) 등이 있다. 1992년에 공주시·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의 맥』과 역시 같은 해 공주문화원에서 간행한 『공주민속』에 실려 있다. 전자에는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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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퉁가리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 길이는 약 10~14㎝이다. 몸통 앞부분은 원통형에 가까우나 뒤로 갈수록 옆으로 납작하다. 주둥이는 몹시 납작하며 주둥이 끝에 입이 있고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아래 턱이 위 턱보다 짧고 입술은 두껍다. 입의 위쪽 앞에 가는 이빨의 넓은 이빨 띠가 있으며 아래 턱에는 좁은 이빨 띠가 있다. 눈은 작으며 머리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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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南山) 아래에 있어 남산골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곡화천면(曲火川面) 지역으로, 1914년 곡화천면 남산동(南山洞)·왕촌(旺村)·홍성리(鴻城里)·곤치동(鵾峙洞)·건평동(乾坪洞)·내동(內洞)·송정동(松亭洞)·화산리(花山里)·신흥리(新興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남산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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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백제시대에 이르는 고분군. 남산리 고분군은 해발 63.5m의 구릉 남동사면 일대에 위치한다. 행정구역상 공주시 탄천면과 부여군 초촌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다. 주변에는 금강에 유입되는 ‘하관천’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하천변에 평야가 잘 발달되어 있다. 남산리의 고분군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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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 2리 송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국도 40호선으로 부여 방향으로 가다가 탄천면 삼각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지방도 799번을 따라 4.2㎞ 남짓 가다 보면 남산리로 진입하는 소로가 나온다. 남산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8.6㎞ 정도 떨어진 공주시와 부여군의 경계에 인접한 남산 2리에 위치한다.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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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안골에서 음력 정월 보름에 지낸 마을 제사.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안골에서는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에 거리제를 치렀다. 안골 입구에는 선돌이 있는데 그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거리제를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약 10여 년 전 거리제를 맡아 주관하시던 마을 어른이 돌아가시면서 거리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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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 2리 송정골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거석 기념물. 공주시에서 국도 40호선으로 부여 방향으로 가다가 탄천면 삼각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지방도 799번을 따라 4.2㎞ 남짓 가다 보면 남산리로 진입하는 소로가 나온다. 남산리 선돌은 공주시에서 남서 방향으로 18.6㎞ 정도 떨어진 공주시와 부여군의 경계에 인접한 남산 2리에 위치한다.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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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남산리 일대에 전해 내려오는 입석 이야기이자 계백장군 이야기. 「남산리 입석과 계백장군 전설」은 기자신앙과 계백의 이적을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남산리 입석은 바로 기자석(祈子石)이므로 여기에다 지성을 드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를 기자정성(祈子精誠)이라고도 하는데, 자식을 낳기를 바라고 정성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2006년에 공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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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성강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영정을 보존하고 있는 영당. 남이웅 집안에는 남이웅의 사직상소에 대해 인조가 내린 불윤(不允)의 비답 문서 12장, 1648년(인조 26) 좌의정으로 승진하였을 때의 교지(敎旨) 등이 남아 있다. 또 남이웅이 소현세자와 청나라에 다녀왔을 때의 필사본 일기인 『노정기(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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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적만(敵萬), 호는 시북(市北)이다. 아버지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를 지내고 참판에 추증된 남위(南瑋)이고, 어머니는 청주한씨이다. 6형제 가운데 셋째로 아버지의 6촌인 남대우(南大佑)[영의정과 의흥부원군에 추증됨]의 양자가 되었으며, 양모는 영일정씨이다. 정묘호란(丁卯胡亂) 때 안주성에서 최후를 마친 남이흥(南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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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 남산골에는 어린 나이로 남편을 따라 죽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안동권씨 동흥군(東興君) 권상(權常)의 6세손인 권세헌(權世憲)의 딸이다. 후손들의 말에 의하면 평소 말이 적고 조용한 편이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권씨가 내산리에 살고 있는 강화최씨 최백복[1733~1753]에게 시집을 오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조선시대의 맏며느리다운 기질을 갖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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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성강리 남산영당에 소장되어 있는 남평조씨의 일기. 『남평조씨병자일기(南平曺氏丙子日記)』는 조선 인조 때에 좌의정을 지낸 춘성부원군 시북 남이웅(南以雄)[1575~1648]의 부인인 정경부인 남평조씨가 병자호란 당시인 1636년(인조 14) 12월 5일 피난길에 오르면서부터 1640년(인조 18) 8월 9일까지 약 4년 동안의 일을 기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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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백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신풍면 백룡리의 용못 남쪽 산 안에 있는 자연 마을이다. 옛날 한 부인이 남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뒷산에 산제당을 모시고 21일 동안 기도하여 마침내 남편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마을이다. 모실의 유래는 정확치 않다. 모실, 또는 모곡(牟谷)이라고 한다. 모실의 실은 고대에 곡(谷)을 의미하는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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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수(山水)가 수려한 곳의 안에 있다 하여 내문이라 하였다. 또한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내동(內洞)과 용문리(龍門里)에서 ‘내(內)’자와 ‘문(門)’자를 따 ‘내문(內門)’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으로, 1914년 정안면 용문리·내동(內洞)의 일부가 통합되어 내문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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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내동(內洞)과 약산리(藥山里)에서 ‘내(內)’자와 ‘산(山)’자를 따 ‘내산(內山)’이 되었다. 조선 말기 공주군 우정면(牛井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우정면 내동·남계리(南溪里)·약산리·동리(東里)·중대리(中垈里)·성조리(聖助里)·죽계리(竹溪里)·부곡리(富谷里)·장대리(場垈里)·율리(栗里)·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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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동의 지세와 형국으로 보아 이 지역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일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문헌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부전동에 살았던 주민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초기부터이다. 태종조에 당진감무를 지낸 예안김씨 김숙량(金叔良)이 확인가능한 부전동 최초의 입향조(入鄕祖)이다. 입향동기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으나 아마 김숙량이 공주이씨를 후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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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는 현재까지 12명의 전·현직 이장들이 마을을 위해 헌신해 오고 있다. 1965년도에 초대 이장을 역임했던 신길상 이장부터 강태성, 이병주, 이병화, 임남순, 이병한, 임철순, 이병상, 정성진, 정해하, 허삼랑, 그리고 현재 김승태 이장까지 모두 내산리를 이끌어 온 숨은 공신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당시에 성행했던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마을의 숙원 사업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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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에 처음 정착하여 뿌리를 내린 성씨는 예안김씨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전주이씨와 강화최씨, 풍천임씨, 그리고 하양허씨가 들어오면서 마을은 점차 번성하였다. 한때 채씨들이 이주하여 새터에 자리 잡고 군수와 공주경찰서장을 배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내산리의 성씨를 살펴보면 다양한 성씨가 분포하는 이른바 각성바지(各姓--) 마을이 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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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지역에 처음 뿌리 내린 강화최씨는 최덕준(崔德峻)이라는 인물에서 시작되었다. 강화최씨가 부전동에 정착하게 된 것은 이미 부전동에 자리잡고 있던 예안김씨와의 혼인관계를 통해서였다. 즉 최덕준이 김석견(金石堅)의 사위가 되면서 강화최씨들은 공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공주의 강화최씨를 일명 뜸밭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 후 강화최씨들은 지금까지 내산리를 비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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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에 언제부터 허씨들이 살았는지는 자료상의 한계로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그나마 당대 최고의 대금 연주자로 알려진 허억봉과 조선 최고의 침의로 공신의 반열에 오른 허임에 대한 사료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어 그 내력의 편린을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사정은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허임의 저술인 『침구경험방』의 서문을 살펴보면 말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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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리는 과거 수백 년간 ‘뜸밭[浮田洞]’이라고 불리우던 큰 마을에 속해 있다. 뜸밭은 공주에서 예산(청양) 방면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가면 연미산 터널을 지나자마자 왼쪽에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는 지역으로, 오늘날의 행정구역상으로는 우성면의 한천리·내산리·도천리·신웅리의 4개 리, 15개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전동의 남쪽 끝에는 연미산과 채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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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정역(廣呈驛)말의 안쪽에 위치하여 내촌(內村)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공주군 정안면(正安面) 지역으로, 1914년 정안면 광정리(廣程里)·보물리(寶物里)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내촌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와 통합되면서 공주시 정안면 내촌리가 되었다. 내촌리의 동부와 서부로는 해발 고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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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달래꽃이 많이 피는 산골이어서 난댕이라 부르던 곳이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흥리라 하였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익구곡면(益口曲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익구곡면의 신내리(新乃里)·상내리(上乃里)·고비리(高飛里)·시화산리(柴花山里)·소룡리(巢龍里)·직동(直洞)이 통합되어 내흥리라 하여 계룡면에 편입되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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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정남도 공주시 정안면 태성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너분배는 마을 길가에 크고 넓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광암(廣巖)이라고도 부른다. 너분배는 평범한 농촌 마을로 가까운 거리에 차령터널이 있다. 동쪽으로 정안면 태성리 윗말과 정안면 인풍리 신암문이가 있고, 북서쪽으로는 윗개치와, 남서쪽으로는 아랫개치와 각각 접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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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대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완부부곡은 공주의 서쪽 40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완도부곡은 지금의 가랏골을 말하며, 이 마을은 노동·완동으로도 불린다. 가랏골이란 명칭은 마을 주변에 갈대가 무성한 데서 유래하였다. 강아지풀이 무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마곡사에서 정안천으로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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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高麗) 때부터 노씨(盧氏)가 정착하여 살았다고 하여 노동(盧洞)이라 하였다고도 하며, ‘갈대 노(蘆) 자’를 사용하여 ‘갈대[蘆]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의 ‘노동(蘆洞)’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신하면(新下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천석동(千石洞)과 세동(細洞)이 통합되어 노동리가 되었다.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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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서식하는 기름종개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 길이는 약 7~10㎝이다. 머리와 몸은 굵고 옆으로 약간 납작한 긴 막대 모양이다. 주둥이는 앞으로 길게 돌출되어 뾰족하며, 4쌍의 작은 입수염이 있다. 눈은 머리 중앙 위쪽에 있으며 그 아래에는 작고 끝이 2개로 갈라진 가시가 있다. 특히 머리 위쪽 양 눈 사이가 아주 좁다. 등 가운데에는 삼각형 모양의 등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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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음력 1월 15일이나 2월 1일 새벽에 솔잎을 꺾어 들고 집 처마 밑을 돌며 노래기를 없애려고 행하는 주술적 행위. 초가집 처마에는 냄새가 고약한 노래기가 서식한다. 해동(解冬)이 되면 겨우내 축축한 처마 속에서 생활하던 노래기가 기어 나와 슬슬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노래기 한 마리가 김치 단지에 빠지면 그 한 단지를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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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2리에서 한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10여분을 올라가면 오래전부터 전해지고 있는 노루목전설의 근원지를 찾을 수 있다. 전설의 주인공은 허씨 가문의 효자인 허흠(許欽)라는 설이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다만 노루목에 있던 허지의 무덤을 이장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앞에는 노루의 무덤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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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에서 발원하여 계룡면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노성천은 행정구역상 충청남도의 공주시와 논산시에 걸쳐 흐르고 있다. 노성천은 대체로 해발 고도 40~60m에 발달해 있으며, 상류부에는 계룡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어 홍수 조절 및 관개용수 수급이 비교적 수월하다. 노성천 연변에는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금대들, 상평들, 산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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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2년 공주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김순태, 유석준을 비롯한 공주소년연맹원들과 함께 반전 운동을 위한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같은 해 3월 5일 영명학교를 비롯하여 시내 요소에 반전 격문을 부착, 살포하였다. 사건 발생 직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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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충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문백(文伯), 호는 관류당(觀流堂)이다.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노응환(盧應晥)[1555~1592]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노숙(盧璛)[1587~1655]은 1624년(인조 2) 인조가 이괄(李适)의 난(亂)을 피하여 공산성 쌍수정에 파천하여 있을 때, 군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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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계회(季晦), 호는 국재(菊齋)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탁(盧應晫)[1555~1592]은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인으로 진사과(進士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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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시회(時晦), 호는 체헌(棣軒)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호(盧應皓)[1574~1592]는 임진왜란 때에 조헌(趙憲)이 일으킨 의병을 따라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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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의병.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명원(明遠), 호는 수암(守庵)이다. 공주의 만경노씨 입향조(入鄕祖) 노혁의 5대손으로, 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를 지낸 노세득(盧世得)[1526~1589]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삼의사(三義士) 중 한 명인 노응환(盧應皖)[1555~1592]은 중봉(重峯) 조헌(趙憲)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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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선비. 노이복(盧以復)[1704~1785]은 생전 학문과 도덕이 남들보다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자연과 더불어 풍월을 즐겼으며 빈궁 속에서도 근심이 없었다.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고 한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반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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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문신. 본관은 만경(萬頃). 자는 대래(大來), 호는 무척와(無慽窩)이다. 충신 노응환(盧應晥)의 5대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노현급(盧賢及), 할아버지는 노결(盧潔), 아버지는 노언상(盧彦相)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로 임강(任矼)의 딸이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인 도암(陶庵) 이재(李縡)[1680~1746]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725년(영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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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노첨(魯瞻), 호는 시와(是窩)이다. 아버지는 장령 한진(韓縝)이다. 청주한씨의 공주 입향조(入鄕祖)이자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한지(韓祉)[1675~?]가 아들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이 되었고 1669년(현종 10) 정시(庭試)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73년(현종 14) 정언, 1680년(숙종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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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녹문리(鹿文里)와 장천리(長川里)에서 ‘녹(鹿)’자와 ‘천(川)’자를 따 ‘녹천(鹿川)’이 되었다. 조선 말기에 공주군 신상면(新上面) 지역으로, 1914년 신상면 녹문리·성주리(聖住里)·상장천리(上長川里)·하장천리(下長川里)·목촌(木村)의 일부가 통합되어 녹천리로 개편되었다. 1995년 공주군이 공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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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운암리에 있는 나루. 현재 공주시 이인면 운암리에 속한 나루로 북으로는 이인면 검상리의 새나루와, 남으로는 이인면 운암리 소맹동과 이어져 있다. 현재 공주에서 부여를 잇는 백제큰길 가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놋점나루를 건너 공주시 우성면 어천리로 갔으며, 어천리를 통해 청양군 목면 방면으로 갈 수 있었다. 옛날 이곳 놋점나루가 있던 운암리 놋점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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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퉁가리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 길이는 약 10~14㎝이다. 몸통 앞부분은 원통형에 가까우나 뒤로 갈수록 옆으로 납작하다. 주둥이는 몹시 납작하며 주둥이 끝에 입이 있고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아래 턱이 위 턱보다 짧고 입술은 두껍다. 입의 위쪽 앞에 가는 이빨의 넓은 이빨 띠가 있으며 아래 턱에는 좁은 이빨 띠가 있다. 눈은 작으며 머리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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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농·어촌 지역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조성된 공업 단지. 농공단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재정을 확보하여 지역 주민이 살고 있는 농·어촌 지역에서 지역민이 취업할 수 있도록 하여 도시와 농·어촌의 격차를 줄여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려고 조성한 공업 단지이다. 1983년 ‘농어촌 소득원 개발 촉진법’이 제정되어 1984년부터 시행됨에 따라 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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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일원에서 농악대들이 들고 다니는 두레를 상징하는 깃발. 농기는 농악대들이 들고 다니는 두레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농기를 만드는 두레의 여건에 따라 각각 다른 농기를 세웠으며, 여기에 딸려서 붙는 물품 또한 달랐다. 공주 지역의 농기에는 각기 다른 서열이 있다. 1. 용담기 서열이 최상위인 용담기는 고장을 대표하는 경우에 한하여 제작한다. 예를 들어 면(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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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마을에서 주로 농사를 지을 때 사용했던 기구. 농기구는 농사 쓰임새에 따라 가는 도구, 삶는 도구, 매는 도구, 물대는 도구, 거두고 터는 도구, 알곡내는 도구, 말리고 갈무리하는 도구, 운반 도구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구왕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가래는 조선가래와 왜가래가 있었다. 조선가래는 나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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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골 의 ‘예술과 마을’ 행사는 매년 비슷한 내용의 취지문을 발표하는데, 마을회관 입구에 넓은 나무판을 세우고 취지문을 써서 내건다. 해마다 걸리는 취지문 내용은 ‘농사가 바로 예술이며, 농민이야말로 위대한 자연생명 미술가’라는 뜻으로 요약된다. 2000년도 주민들이 직접 준비하고 개최한 ‘예술과 마을’ 행사 당시부터 마을회관에서 볼 수 있었던 취지문의 내용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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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가 한창이던 시기에 마을조사를 가면 곳곳에서 농사일을 돌보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아저씨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마을조사 때 이장님과의 첫 만남도 오토바이로 시작되었지만 오토바이를 타는 주인공은 비단 이장님뿐만이 아니다. 다른 마을과 마찬가지로 공암마을도 젊은 사람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마을을 지키며 농업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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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용성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토축 산성.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변에 있는 만큼 축조 경위는 왕도의 방비 체제와 관련시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남아 있는 형태로 볼 때는 사비보다 웅진을 방비하기 위해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공주에서 부여로 통하는 국도 40호선을 타고 8㎞쯤 가다 보면 용성리 누에머리에 닿게 된다. 용성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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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인간의 경제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차 산업이다. 농업은 유기적인 생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토지와 기후 등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그 방법과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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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공주에서 활동한 학자, 문신.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서(子恕)이고, 호는 농은(農隱)이다. 할아버지는 윤황(尹煌)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다. 어머니는 공주이씨(公州李氏)로 이장백(李長白)의 딸이다. 형은 윤증(尹拯)이다. 유일(遺逸)로 장령을 역임했다. 1674년(현종 15) 특별 인재를 추천할 때 이지렴(李之濂), 한기, 이동규 등과 함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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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골마을 의 체험거리로는 예술체험, 예술개떡만들기, 알밤줍기, 표고버섯수확, 고구마캐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계절별 원골마을 체험 프로그램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봄놀이로 나무곤충 만들기를 소개하고 있다. 곤충채집을 직접 곤충을 잡아서 하기보다는 더 귀엽고 앙증맞은 곤충채집 방법으로 나무로 직접 잡고 싶은 곤충을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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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풍면 동원1리 원골마을은 충청남도에서 ‘예술마을’로 소문이 자자한 마을이다. 마을에서 매년 초여름에 펼쳐지는 예술제는 ‘농촌과 예술’의 자연스러운 조화를 보여준다. ‘마을과 예술’은 ‘한국국제자연미술가협회(약칭 야투[野投])’의 자연미술운동의 일환으로 1998년 원골에서 ‘마을과 예술’이란 주제로 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현지 주민들의 작품들도 전시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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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마을지도자이며, 그동안 예술제 행사가 열릴 때마다 총무를 맡아 많은 수고를 하였고, 그러면서도 틈틈이 작품을 매년 출품하여 예술제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내었던 서정식(49세)이 도시생활에서 원골마을로 귀향하여 농촌생활에 정착해온 이야기를 통하여 현재 농촌생활의 즐거움을 정리해 보았다. 예전부터 원골마을의 사람들은 가난하지만 초라해 보이질 않았고, 그렇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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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란 호칭을 듣던 때가 벌써 5년 전이다. 지금은 손발에 흙 묻히고 몸에서는 땀 냄새나는 평범한 시골 아저씨의 모습이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우연찮은 기회에 친구와 함께 입시학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당시 초등학교 교사셨고 큰 누님과 매형도 교직에 계셨다.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도 되었지만 그래도 최언평 씨는 알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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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은 백제시대부터 나라를 지키는 명산이라는 대우를 받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산의 모양새가 금닭이 알을 품고, 용이 승천하는 모습이라 하여 각각의 글자를 따 ‘계룡’이라 한 것인데 백제가 망하고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와서도 역시 국가에서 제사를 올리는 산이었고, 유교주의가 지배한 조선시대에까지도 국가적으로 정성을 들인 곳이었다. 그런 역사속에 갑사가 들어섰고, 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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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분강리에 있는 장애인 생활 시설. 정신적, 신체적 장애로 인하여 일상 및 사회 생활에 제약을 받고 있는 장애인들에게 상담, 치료, 훈련 등 홈케어 방식의 다양한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킴은 물론 편안하고 쾌적한 생활 환경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2005년 6월 21일부터 사회복지법인 우리복지원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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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에서 서식하는 잉어과에 속한 민물고기. 몸길이는 약 10㎝이다. 몸은 길고, 옆으로 약간 납작하면서 원통형에 가깝다. 입은 주둥이 밑에 붙어 있으며 꼬리자루가 다른 고기에 비하여 매우 납작하다. 전체적인 몸 형태는 몰개나 참몰개처럼 배가 볼록하지 않고 비교적 날렵하다. 주둥이는 약간 뾰족하고 위턱이 아래턱보다 약간 길다. 1쌍의 입수염은 비교적 길면서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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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공주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정숙(靜叔), 호는 눌재(訥齋)이다. 아버지는 이덕사(李德泗)이고, 우암 송시열이 매부이다. 1642년(인조 20) 진사로 정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자·검열을 거쳐 이듬해 대교가 되었고, 1646년 설서·정언·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50년(효종 1) 공산현감·수찬을 지냈고 낙당(洛黨) 김자점(金自點)의 일파로 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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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사현리에 있는 프레스 전문 기업체. 1989년 자본금 5천만 규모의 뉴올제지를 창업하였다. 이후 1990년에 한국베랄, 1992년에 국내 금형 개발 업체와 기술 협약 계약을 체결하였다. 1990년에는 상호를 뉴올로 변경하면서 자동차 부품 산업으로 업종 변경을 추진하여, 자동차의 중요 보안 부품인 브레이크 부품의 개발에 참여하게 되었다. 1991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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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만수리에 있는 자연 마을. 마을 앞에 넓은 들판이 있고, 느러지게 넓다고 해서 느랏이라 부른다. 또는 큰 동네하고 떨어져(늘어져) 있기 때문에 유래된 마을 지명으로 보인다. 마을이 낮은 구릉지에 있으며,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인면 만수리 아래만수동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동쪽으로 천안~논산 간 고속국도가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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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의 시목(市木)으로, 느릅나무과에 속한 낙엽 활엽 교목. 높이는 26m, 둘레는 3m 내외이다. 잎은 길이 2~12㎝, 너비 1~5㎝이며 어긋나고 긴 타원 모양 또는 달걀 모양이며 표면이 매우 거칠거칠하고 끝이 점차 뾰족해진다. 잎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잎맥은 주맥에서 갈라진 8~18쌍의 측맥이 평행을 이루며, 잎자루는 1~3㎜로 매우 짧다. 나무껍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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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등지에서 살았던 곰과에 속한 포유동물. 식육목 곰과 동물을 총칭하여 곰이라 한다. 크기는 종류에 따라 다르며 가장 작은 종인 말레이곰은 몸길이 1.1~1.4m에 몸무게 65㎏이고, 가장 큰 종인 불곰은 몸길이 1.9~2.8m에 몸무게 700~800㎏에 이른다. 공주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털색은 몸 전체가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몸집이 크고 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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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 등지에서 살았던 곰과에 속한 포유동물. 식육목 곰과 동물을 총칭하여 곰이라 한다. 크기는 종류에 따라 다르며 가장 작은 종인 말레이곰은 몸길이 1.1~1.4m에 몸무게 65㎏이고, 가장 큰 종인 불곰은 몸길이 1.9~2.8m에 몸무게 700~800㎏에 이른다. 공주시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털색은 몸 전체가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다. 몸집이 크고 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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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신기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절 터. 공주-논산 간 국도변 오른쪽의 공주시 월성산이 남쪽으로 흐르는 신기동 뒷산 해발 160m 지점 계곡 사이에 있다. 현재 능엄사지로 알려진 곳에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능엄사(陵奄寺)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 사찰의 건립 과정에서 삼국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작은 불상 3구가 발견되었고,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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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삼국시대의 불상. 머리는 둥근 육계와 머리카락의 표현이 없는 소발이다. 목은 굵으며 어깨는 좁은 편인데, 통견의 대의는 가슴 밑으로 굵은 옷깃을 형성하며 배 밑으로 길게 늘어져 있다. 배 밑으로는 반원형을 그리며 옷주름이 흘러내렸는데, 좌우 대칭이 아니라 약간 사선을 이루어져 옷자락을 왼쪽 어깨에 걸쳤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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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금학동과 신기동의 경계인 능치에 있는 백제시대의 고분군. 능치(陵峙)는 금학동과 신기동의 경계 지점으로 공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한다. 능치 고분군은 월성산이 남쪽으로 길게 흘러내린 능선의 남동사면에 위치하며, 신기동 고분군과 마주하고 있다. 따라서 신기동 고분군과 능치 고분군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지형이 구분되고, 조사 시기가 다르다는 점에 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