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16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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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笨 |
영어음역 | Jeong Bun |
영어의미역 | Jeong Bun |
이칭/별칭 | 애일당(愛日堂),충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고순영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충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 호는 애일당(愛日堂). 판중추부사 문정공 정이오(鄭以吾)[1347~1430]의 아들이다. 그러나 정분에게 자손이 없어 종가에 봉사손(奉祀孫)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홍주목사 정효안(鄭孝安)이 자신의 장자인 정지산(鄭之産)을 그 종숙(從叔)인 정분의 계자(系子)로 입양시켜 대를 잇게 했다. 진주정씨가 이곳 호계리에 정착하게 된 것은 정분의 계자인 정지산의 아내 여산송씨 대에 이르러서이다.
[활동사항]
단종조에 우의정을 지낸 문신으로서 충청도감사, 이조참판, 평안도관찰사 등 관직을 역임하였다. 1452년(단종 원년) 김종서의 천거로 우의정에 올랐다. 그러나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보필하던 황보인, 김종서 등이 주살되었고 정분은 낙안(樂安)에 안치되었다가 곧 고신을 추탈당한 뒤 낙안의 관노가 되었다. 이후 1년 정도 유배 생활을 하다가 끝내 1454년 사사되었다.
[상훈과 추모]
1746년(영조 22) 관작이 복구되었으며, 1758년(영조 34)에 충장(忠莊)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786년 장흥의 충렬사에, 1791년 장릉 충신단에 각각 배향되었다. 1797년(정조 21) 공주 요당서사에 제향되었고, 1804년(순조 4)에는 충신으로 명정을 받았으며, 1808년(순조 8)에 부조묘(不祧廟)를 받았다. 1808년(순조 8)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사우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