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0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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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村里山神祭-距離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and Ancestral Memorial Services of Suchon-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정숙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에서 음력 1월과 10월에 지내는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수촌리 마을에서 진행되는 산신제와 거리제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수촌리에서 직접 거리제 행사를 주관하는 마을 주민 표중근의 이야기와, 신당의 증축 횟수(다섯 번 증축)로 미루어 약 500년 전부터 행해져온 행사로 추측된다.
산신제는 음력 10월 3~5일 사이에 이루어진다. 산신제의 경우 15년 전부터 산신제의 제물(祭物)을 담당하던 할머니(보살)가 산신제를 홀로 지내고 있다고 한다. 할머니가 혼자서 산신제를 지내게 된 이유는, 보살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산신제는 네가 맡을 것이다.”라는 신령의 예언을 받았고, 이 이유로 인해 제물을 담당하게 되었다. 예언의 한 구절에는 혼자 직접 산신제를 올리라는 내용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수촌리의 산신제는 마을 신앙에서 개인 신앙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산신제를 마을 단위의 규모로 지낸 마지막 행사는 2003년이다.
거리제는 매년 정월 열나흘(혹은 정월 보름)에 행해진다. 거리제의 경우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성황대신(城堭大神)과 산왕대신(山王大神)을 동시에 모시고 있는 점이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행사 방법과 산신제의 내역이 담긴 자료가 있었다고 하나, 6·25전쟁 중에 축문과 제기(祭器)가 훼손 또는 분실되었다. 현재 전하는 축문은 일제강점기에 산신제와 거리제를 전수받은 마을 주민 표중근이 가지고 있던 일부 사본에 의해 복원된 것이다.
수촌리 산신제와 거리제는 과거에는 마을의 재난을 없애고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의 큰 제사였지만, 지금은 산신제와 거리제를 하나로 묶어 간소하게 지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수촌리 산신제 제당은 공동으로 산제를 지내는 양짓말과 음짓말 중간의 들판에 자리한다. 주민들은 산신당이라는 명칭에 알맞게 신당을 산으로 옮긴 적도 있었지만, 산신의 현몽(顯夢)으로 본래의 위치로 되돌려놓았다. 신당의 규모는 그리 큰 편은 아니며 다섯 번 증축했다.
거리제의 경우 예전에는 언덕 위에 있는 참나무 앞에서 지냈다. 옛날 마을 사람들은 이 부근을 ‘서낭댕이’라 불렀다고 한다. 최근에는 거리제를 지내는 장소가 수촌2리 마을회관 앞에서 옮겨졌다.
[절차]
시대가 변하면서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고, 제사를 등지면서 수촌리에서도 산신제와 거리제를 지내는 풍속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근래에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 산신제와 거리제를 겸해서 1년에 한 번 지내고 있다. 6·25전쟁 당시 서류를 도난당해 증거분이 없어져 마을 어른들의 구술에 의해 다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산신제의 경우, 지낼 날을 며칠 앞두고 제관·축관·주인·짐꾼을 선출했다. 제비(祭費)는 집집을 돌며 걸립하여 마련했다. 마련된 제비로 상어포·민어포·시루떡·통돼지·메·나물(미나리·고사리·무)·삼색실과·과일 등을 장만했다. 과거에는 통돼지 대신에 소[牛]를 잡아 산신께 바쳤다고 한다. 산제는 유교식으로 정숙하게 치렀다. 축을 읽고, 소지를 올리면 제사는 끝나고, 산제가 끝나면 제물을 음복했다. 산신제는 약 15년 전부터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가 혼자 지내고 있다.
거리제의 경우도 제사를 지내기 초이렛날 전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을 뽑아 제사를 주관할 제관과 축문을 읽을 축관 등을 선출한다. 제비(祭費)는 집집마다 추렴을 하거나 동답(洞畓), 마을 공동재산에서 낸다. 제관은 거리제 며칠 전에 정갈하고 부정이 없는 사람으로 선정하였으며, 일단 제관으로 선출된 사람은 일반 제관에 준한 금기가 따랐다.
제일(祭日)이 정해지면 마을 입구와 산신당, 제관의 집 앞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을 막는다. 동민들은 당제(堂祭)에 대한 지시가 없어도, 이레부터 개·닭 등 가축의 도살을 금하고 목욕재계하여 심신을 깨끗이 하였다. 제물은 삼색실과 백설기 한 시루, 명태포, 술 등을 준비하였고, 제기는 제관으로 선정되는 사람의 집 그릇을 사용했다.
마을 사람들은 제사를 지내러 가기 이틀 전부터 일주일간 기도를 드리고 제사를 모시러 간다. 마을이 흥하고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며 마을 어른과 젊은이 모두가 건강하고 잘 될 수 있도록 1년 동안의 안녕무구를 위해 축원을 드린다. 제사를 지내기에 앞서 제단과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제단에 제상·향안·주가·소탁·자리를 배설한다. 제수를 마련하고 참사자는 재배를 한다.
술을 가득 부어 올리며 젓가락을 시접에 가지런히 한다. 축관이 제관의 왼쪽에서 동향하여 축을 읽는다. 축문을 읽고 나서 축관만 재배한다. 젓가락을 내린 후 참사자 일동 재배 후 제수를 물린다. 제의는 제관이 분향·강신하고 재배한 다음 소지(볏짚을 태워서 올림)를 올리는데, 소지가 끝나면 물리면서 밥·떡·과일 등을 바가지에 담아 올린다.
제사가 끝나면 징을 울리고 풍장을 치며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제를 지낼 때에는 참나무 위에 삼베로 만든 막을 친다. 각 마을에서는 풍장을 울리며, 마을의 기를 들고 나온다. 기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써 있다. 산신제가 조용한 가운데 치러지는 데 반해 거리제는 잔치 분위기 속에서 지낸다.
[축문]
〈산신제 축문〉
“이 해의 차례는 (간지 제사가 있는 12간지 중 하나)해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수촌리 유학 ○○○○는 ○○동신께 감히 고하나이다. 오직 산신의 신만이 멀리 속리산으로부터 가까이 계룡산에 이르고, 우주를 두루 굽어보시는 그 기운이 맑으시어 수촌동리에 이르러 기이하고 수려함을 이루시다, 재앙을 소멸하고 길상을 나리시고 알맞게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소서. 비록 자주 제사는 못 올리나 항상 굽어 살피소서. 한마을 늙은이들이 해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고하나이다. 마을 모두가 같이 참제하나 조금은 해이하였습니다. 주변을 청소하고 자리를 마련하고, 항아리술은 정결하고 변두의 례를 갖추고, 쇠소리 북소리를 울리오니, 영신은 구름과 같이 일진이 좋은 날에 신령이시어 많이 드시고, 역질을 물리치시고, 곡식이 잘 여물게 하소서. 노인이나 젊은이가 흥 노래를 부르도록 영원히 재해가 없이 하여 주소서. 풀내음 가득히 풍년을 내리소서(維歲次 干支 忠淸南道 公州郡 儀堂面 水村里 幼學 敢昭告于 惟山之神 遠自俗離 邇悒鷄嶽 其形蜿蟺 其氣淸淑 至于水村 毓奇競秀 消災降祥 興雲出雨 雖非望祀 政合昭事 一村父老 歲歲虔告 今複致齊 省己少弛 淨掃玬壝 設席肆筵 樽酒精潔 籩梪有賤 賽鼓鼕鼕 靈神如雲 日吉辰良 神其醉飽 呵去瘟癘 噓茁禾黍 耋艾歌詠 永無災害 一辨淸香 降登有數 蕭然風來 況聞肹響 格我簙羞 在上洋洋 尙 響)”
〈거리제 축문〉
“이 해의 차례는 (간지 제사가 있는 12간지의 하나)해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수촌리 유학 ○○○는 ○○동신께 감히 고하나이다. 산왕대신, 성황대신이시여. 멀리 속리산으로부터 가까이 계룡산에 이르고, 우주를 두루 굽어보시는 그 기운이 맑으시어, 수촌동리에 이르러 기이하고 수려함을 이루시다, 재앙을 소멸하고 길상을 나리시고 알맞게 구름을 일으켜 비를 내리소서. 비록 자주 제사는 못 올리나 항상 굽어 살피소서. 한마을 늙은이들이 해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고하나이다. 마을 모두가 같이 참제하나 조금은 해이하였습니다. 주변을 청소하고 자리를 마련하고, 항아리술은 정결하고 변두리의례를 갖추고, 쇠소리 북소리를 울리오니, 영신은 구름과 같이 일진이 좋은 날에 신령이시어 많이 드시고, 역질을 물리치시고 곡식이 잘 여물게 하소서. 노인이나 젊은이가 흥 노래를 부르도록 영원히 재해가 없이 하여 주소서. 풀내음 가득히 풍년을 내리소서(維歲次 干支 忠淸南道 公州郡 儀堂面 水村里 幼學 敢昭告于 惟城堭大神山王大神 遠自俗離 邇悒鷄獄 宇宙歷覽 其氣淸淑 至于水村 毓奇競秀 消災降祥 興雲出雨 雖非望祀 政合昭事 一村父老 歲歲虔告 一切同參 省己少弛 淨掃玬壝 說席肆筵 樽酒精潔 籩梪有賤 錚鼓同音 靈神如雲 日吉辰良 神其醉飽 呵去瘟癘 噓茁禾黍 耋艾歌詠 永無災害 葫臭涵碩 降登有數 蕭然風來 況聞肹響 格我簙羞 奠酌 尙 響)”
[부대행사]
전에는 산신제에 쓰이는 제물인 통돼지·삼백실·짠고기(대구포와 상어포)·떡시루(백무리)·술 등을 산신제가 끝난 후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손이 부족하고 제사를 드리는 비용(100만 원 상당)이 많이 들어 따로 부대행사를 하지는 않는다. 거리제를 지낸 후에도 밤새 농악을 울리며 제사에 쓰인 음식을 나누어 먹고 아이들은 마을의 어른들에게 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으나, 지금은 제사에 쓰인 음식을 마을 노인정에서 나누어 먹는 정도이다.
[현황]
수촌리의 산신제는 개인 신앙적 성격으로 바뀌어 마을 할머니 혼자 치르고 있고, 거리제는 마을 신앙적 성격을 유지하기는 했으나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마을 단위로는 산신제와 거리제를 합쳐 1년에 1회 거리제를 행하는 날에 함께 치르고 있으며, 제를 지내는 장소도 마을회관 앞으로 옮겨졌다. 지내던 제물의 규모도 축소되고, 제관과 축관의 금기사항도 많이 줄었다. 거리제는 마을 어른인 표중근이 주관하고 있으며, 후대를 위해 축문과 제사절차를 알기 쉽게 한글로 풀이하여 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