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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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山里高德洞山神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Service for the Mountain God in Wolsan-ri Godeok-dong Nopeundeokgol Vill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정숙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고덕동에서 음력 1월 3일에 지낸 마을 제사.
[연원 및 변천]
월산리 고덕동 산신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마을 어른들은 고려 중엽부터 지냈다고 한다. 행사는 정월 초이튿날부터 행해진다. 산신제는 시대의 흐름과 젊은 사람들의 부족, 행사의 경비 문제 등으로 더 이상 치르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고덕동은 월산1리와 월산리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마다 산신제 지내는 위치가 다르며, 신당 오르는 길 주변에는 밤나무가 많다. 대표적인 산신각이 있는 곳의 옆과 앞에는 금강송으로, 300년이 된 소나무가 있었으나 지금은 쓰러져 있다. 대표적인 산신각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개량사업으로 새로 지었다. 산신각 안에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돌이 있었다.
[절차]
음력 정월 이튿날 책력(冊曆)을 볼 줄 아는 사람의 집에서 동네 어른 가운데 환갑이 안 된 사람들이 모여 제관 등을 정했다. 『가정보감(家庭寶鑑)』이라는 책자를 보고 생기(生氣)·복덕(福德)·천의(天意)를 따졌다. 연령이 닿은 사람 중에 깨끗한 사람을 고르는데, 제사를 주관할 제관과 축문을 읽을 축관, 제물을 장만할 유사(有司)를 각 1명씩 선출했다. 제관 중에서 제물을 장만하는 유사는 보다 중시되어 일단 선정되면 3일간 정갈하게 하고, 살생도 하지 않으며, 담배도 피워서는 안 되고, 부부관계도 갖지 않으며, 외부인도 출입금지 시켰다.
월산리 고덕동 산신제의 본격적인 행사는 음력 정월 3일 하루 동안 이루어졌으며, 산신각에서 마을의 수호신인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과 결속, 농사의 풍요를 기원했다. 황소를 잡는 곳에 제관이나 축관, 고양주 담는 사람은 가지 못했다. 탕을 끓일 것만 갖다 주고, 유사는 제에 올릴 것만 가지고 마을 사람들과 모두 모여서 올라갔다. 술은 조라술이라고 하는데 쌀로 3홉으로 하며 아침에 담았다가 저녁에 걸렀다.
제사상 차리는 것은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감 등으로 이루어지며, 과일은 통으로 다듬지 않고 올렸다. 암소는 올릴 수 없고, 황소만 되는데, 이는 암소는 새끼가 들었을 경우 두 마리는 잡을 수 없다 해서 황소로 했다고 한다. 황소 머리와 염통, 간, 지라, 방골 앞다리부터 반쪽만 가지고 갔다. 그리고 콩팥은 꼭 있어야 했다.
제관이 공양을 시작하는데, 그 해에 산 것을 가지고 제를 올렸다. 처음에 절을 하고 강신제라고 해서 잔을 한 번 가셨다. 잔을 부어놓고 축관이 축문을 읽고 나면 북을 가지고 와서 동네에서 소리를 질렀다. 유교식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제관, 축관, 유사 등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도포에 유건을 착용했다.
[축문]
"이 해의 차례는무진 시월 경오 삭 초하루 경오인데 / 유학유길준이 밝게 고합니다. 토지신이시여/ 저 건너서 높이 늦은 것을/ 벼슬한분 삼봉이 나와서/ 고인들에게 덕을 쌓았으니/ 오직 뿌리가 언덕을 덜어가네/ 그 이름이 박씨로 떨쳤으니/ 태조태화(벼슬이름)/ 남쪽으로는 낮고 낮으면서 무성하게 집안이 잘 되었고/ 밝은 신령이 있음으로써/ 강한벼슬을 봉해준 것이/ 이 낮은 백성으로 살아가며 백리를 간다/ 때는 오직 가을에 이르렀는데/ 날은 길하고 어진 때인데/ 사람들이 많이 힘을 입어서/ 그릇된 혜택을 하지마라/ 소리를 내어 제기(엄숙)하고 목욕 재계하고/ 닦어 공경하고 지성이 부족하지 않아/ 폐백을 이미 이르러 올렸으니/ 그격에 향을 머금고 그격에 이르렀다/ 얻지 괴이한 병을 쫒고/ 엄숙히 노력하고 가다듬어 쫒아 버리고/ 열열이 재촉하는 것을 금하고/ 참다운 길 한 것을 쉬여/ 집집마다 편안하고 즐겁다/ 노인과 젊은이들이 편안하고 즐겁다/ 소말 번거로이 성하고 사람은 질병이 없어졌다/ 한고을 다화목하고/ 농작물이 풍부하게 오르고/ 넓고 넓일 것이 집안에 가득하니/ 살아가는데 평등함이 오를 때다/ 신령땅을 오직 맑고 닦으니라/ 삼감으로서 거칠고 막힌 것이 아니다/ 날마다 기쁨을 환영한다/ 미태평가를 부른다/ 고을을 감시하고 보호한다/ 지성에 이르고 제개(숭배하여서)함에 이른다/ 도로에 나가고 들어오매/ 신은 흉성하여 날마다 향기나고/ 영원히 이 고을 도우며/ 헌납하여 올려 향을 올립니다(維 歲次戊寅十月庚午朔一日庚午 幼學 兪吉湷 敢昭告于 土地之妽 陟被崔晩 中租三峰 北隣廣德 維根盖峙 其名咸朴 太租太華 南抵茂盛 有灵紳明 封疆百里 居此下民 時維秋成 日吉辰良 人多藾之 莫非惠澤 齊聲齊沐 敬修微誠 奠幣旣成 庶格歆享 遠逐怪疾 嚴逐疾疫 禁其烈崔 眞承休吉 家家安樂 老小安樂 牛馬繁盛 人無疾病 一洞和睦 農作豊登 洋洋滿家 生此昇平 灵維明明 謹以非漠 日日歡喜 歌此太平 俯鑑保佑 致齊致誠 出入道路 紳其亨之 永佑此洞 尊獻 尙 饗)"
[부대행사]
소제를 올리고 나서 산신당에서 내려온 다음에는 두 가지 행사를 곁들였다. 하나는 마을 사람들이 북을 가지고 와서 동네에서 ‘마중시루’를 하는 것이다. 춤을 추며 사람들은 세 번 소리를 지른다. 또 하나는 집집마다 소지를 올렸다. 남자는 곤명, 여자는 건명이라고 해서 남자 이름을 적어서 불태웠다.
이로써 모든 행사가 끝나는데, 끝난 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에 올렸던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밤이 저물도록 놀았다. 다음날 오전에 모여서는 제사 경비를 결산했다. 동편과 서편 마을 사람들이 각기 한자리에 모여서 결산을 한 뒤, 공동식사를 하고 윷놀이나 화투 등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현황]
공주시 정안면 월산리 고덕동 산신제는 일본 기자들이 취재를 할 정도로 성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에 이를 전수할 젊은 사람들이 적어 5~6년 전부터 맥이 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