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702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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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梨谷里-塔祭 |
영어의미역 | Pagoda Religious Service of Yigok-ri Baeksil Village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 |
집필자 | 구중회 |
성격 | 탑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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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장소 |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 백실마을 |
신당/신체 | 탑(塔) |
[정의]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곡리 백실에서 탑에 제를 올리어 금강의 수해를 막고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자 지냈던 마을 제사.
[개설]
이곡리는 1983년에 이인면에 편입되었다. 이곡리의 원래 순수 우리말 이름은 배실이다. 1914년 일본의 행정 구역 개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배실이 이곡리(梨谷里)로 번안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공주 지역은 여러 차례 수해를 입은 기록이 나온다. 1547년(명종 2) 6월 24일 충청감사 김익수(金益壽)의 보고에는 ‘금강 물이 불고 근처의 시냇물이 합쳐 흘러 사방이 강이 되면서 관사가 내려앉아 목사와 판관이 겨우 빠져나와 피신했다. 공사의 집들이 물에 잠긴 채 16일에 이르러 관사의 창고가 텅 비었으며 모든 것이 삭막해졌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1647년(인조 25)에는 금강이 범람하여 민가가 침수되고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이 있다고 보고되기도 했다. 특히 18세기 이후에는 홍수 피해가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1723년(경종 3)에는 민가 100여 호가 떠내려갔고, 100년 후인 1824년(순조 24)에도 민가 100호가 무너지고 4명이 익사했다. 1839년(헌종 5)에는 민가 489호와 압사자 10명, 1857년(철종 8)에도 민가의 퇴압(退壓)과 인명이 익사하였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다.
공주시 검상동에서는 금강의 피해를 막는 와석지신을 이사신(里社神)으로 모시고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마을이나 공동체의 신앙적 믿음이 개인적인 신앙으로 발전하여 기자(祈子)의 기능까지를 담당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신당/신체의 형태]
이인면 이곡리 백실에는 돌탑 세 기가 마을 북쪽 입구의 좌우에 나뉘어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모자 탑이라고도 부르며,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와 같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자손이 귀한 사람이 정성을 들이면 자손을 얻는다고도 한다.
[절차]
원래 공주 지역에서 탑에 대한 믿음은 수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예로 공암리의 할머니 탑은 금강의 범람과 관련이 있다. 이곡리 백실에 탑이 위치한 곳은 마을의 물이 금강으로 진입하는 길목이다. 현재는 물길이 금강에서 떨어져 있으나, 과거 금강의 범람이 잦았던 곳이다.
이곡리 백실 탑제의 의례는 고사의 형식으로 지냈다고 한다. 다른 지역과 같이 제관 선발과 금기, 제비의 걸립과 진설, 가가호호의 호명과 소지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리라고 추측한다. 해방 이전에는 지냈으나 해방 이후부터 소실되어 더는 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