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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900922
한자 獨立運動家
영어음역 Dongnibundongga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고령군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김일수

[정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민족 독립을 위해 경상북도 고령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운동가들.

[개설]

독립운동가들은 개항기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거나 일제강점기에 국내외에서 일제에 저항한 사람들이다. 독립운동의 범위는 한일 병합을 기점으로 앞선 시기에는 크게 계몽 운동과 의병 운동으로 설정할 수 있고, 이후 시기에는 국내외 무장 투쟁, 3·1운동, 노동·농민·학생 운동 등 대중 운동과 문화 운동, 독립운동 자금 모집과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설정될 수 있다.

[변천 및 활동 방식]

고령 지역에서는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을사조약 시기에는 실력 양성론에 입각하여 학교 설립 등 교육 운동이 중심이 된 계몽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한일 병합으로 일제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는 달성친목회사건[일명 조선국권회복단사건]과 3·1만세운동을 전개했으며, 유림단독립청원운동[일명 파리장서사건]에 참여하였다.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이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분화되고 대중 운동이 본격화되자 고령 지역 사람들은 전국적인 흐름에 동참하면서, 지역의 사회 문제를 민족 문제와 연관시키면서 독립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곧 청년 운동과 농민 운동의 전개가 바로 그것이었다. 민족주의 운동 세력과 사회주의 운동 세력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민족 협동 전선으로서 신간회를 조직하였다. 또한 1930년대 초에는 일제의 침탈에 따른 농촌 몰락이 가속화되자 지주의 횡포에 저항하는 소작인 조합과 지세 불납 동맹을 통한 농민 운동을 일으키며 일제에 저항하였다.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고령군의 독립운동가들로 대표적인 세력을 형성한 것은 유림들이었는데, 이들은 유림단독립청원운동에 참여하면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경상북도 지방 유림들에 의해 추진된 독립 청원 운동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열린 파리강화회의에 일제의 한국 지배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림과 동시에 국제 여론에 독립을 호소하는 길만이 나라의 독립을 찾는 방안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서 추진되었다. 이 운동은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파급되어 가던 1919년 4월 중심인물들이 일본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전모가 드러났다. 파리장서에 서명한 전국 유림 대표 137명 중 고령 출신은 곽수빈(郭守斌), 이인광(李寅光), 이상의(李相義), 윤양식(尹亮植), 곽걸(郭杰), 이영로(李泳魯) 등 6명이었다.

고령 지역 3·1만세 운동의 경우, 쌍림면 매촌리최경현(崔卿鉉)·오성열·서병직·이준이·서홍석·전하성 등은 독립운동을 준비하다 일본 경찰에 의해 발각되면서 좌절되었으나, 덕곡면 원송리배기석(裵基奭) 등 주민 20여 명은 만세 시위를 벌였다. 또 우곡면에서는 박재면 등 고령박씨(高靈朴氏) 문중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운동이 전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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