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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201457
한자 金瑢埈
영어음역 Gim Yongjun
이칭/별칭 근원,선부,검려,우산,노시산방주인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권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화가|학자
출신지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성별
생년 1904년연표보기
몰년 1967년연표보기
대표경력 서울대학교 교수

[정의]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화가이자 학자.

[개설]

1904년 구미시 선산 지역에서 태어났다. 호는 근원, 선부, 검려, 우산, 노시산방주인 등이다.

[활동사항]

김용준은 1925년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31년 일본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는 등 재능을 나타내었고, 동경미술학교에 유학하여 서양화를 공부하고 돌아온 1933년부터 1938년까지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교사로 근무하였다. 이 시기에 서화협회전람회에만 몇 차례 참가했을 뿐 서양화가로서의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으며, 1939년부터는 유화에서 전통적인 동양화로 전향하였다. 동양화를 독학으로 공부하였으나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초대교수를 지낼 정도로 이론과 실기에 능통했다.

1946년 8월 20일 『동아일보』에 「정계(政界)에 보내는 나의 건의(建議)」를 기고하여 광복 직후 좌·우익의 지도자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겸허하고 자성하는 자세로 시대를 이끌어 나갈 것을 당부하였다. 1948년에는 한국 수필문학의 정수로 손꼽히는 『근원수필(近園隨筆)』을 발표하였는데, 당시 문단에서는 시는 정지용이고, 소설은 이태준이고, 수필은 김용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김용준의 수필은 명문으로 손꼽혔다. 1949년에는 『조선미술대요(朝鮮美術大要)』를 완성하였다.

1950년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수와 조선미술가동맹 조선화분과위원장과 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1958년 『고구려 고분벽화 연구』를 탈고하는 등 조선화(朝鮮畵)의 정체성이나 미의식 등과 관련된 저술과 교육을 통해 북한 화단을 이끌었다. 1967년 사망할 때까지 북한에서 전통적인 조선화가로서 사실주의 형식의 정치적인 그림과 풍속적인 인물화를 그리는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근원 김용준전집』, 『근원전집 이후의 근원』 등이 대표적이며, 월북전의 비전향적 저서로 『근원수필』, 『조선미술대요』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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