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6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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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載圭 |
영어음역 | Gim Jaegy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조현걸 |
성격 | 정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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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
성별 | 남 |
생년 | 1926년 |
몰년 | 1980년 |
대표경력 | 건설부장관|중앙정보부장 |
[정의]
경상북도 구미 출신의 정치가.
[활동사항]
김재규는 1945년 경북사범대학교 중등교원 양성소를 수료하고 김천중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다가 1946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갔다. 1952년 육군대학을 졸업하였고, 1954년 연대장을 거쳐 1957년 육군대학 부학장을 지냈다.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호남비료 사장으로 임명되었고, 1964년 6·3사태 때에는 준장으로 계엄군을 지휘하였으며, 이후 보안사령관·3군단장 등을 역임하고 전역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이 되어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같은 해 중앙정보부 차장으로 임명되었다. 1974년 건설부장관을 거쳐 1976년 12월 중앙정보부장에 임명되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였다.
1979년 YH무역 여성노동자농성사건,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의 의원직 박탈사건, 부산·마산 사태 등 계속된 정국 불안을 해결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다. 동시에 박정희 대통령을 둘러싼 경호실장 차지철(車智澈)과도 심각한 마찰을 일으켰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만찬회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 등을 권총으로 살해하고 체포되어 군사재판에 회부되었다. 1980년 1월 육군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같은 해 5월 24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상훈과 추모]
충무무공훈장, 대통령표창, 보국훈장 천수장·삼일장·국선장·광복장·통일장과 킹압둘아지즈훈장(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