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5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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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平里-洞祭 |
영어의미역 | Village-ritual Ceremony of Keunma Haepyeong-ri |
이칭/별칭 | 주산 제사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큰마마을 |
집필자 | 석대권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해평리 큰마마을에서 음력 정월 14일 밤에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해평리 큰마마을 동제는 마을의 주산(主山)인 갈마산(해발 64.4m)에서 음력 정월 14일 저녁 8시경에 보천사 스님이 산신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주민들은 이를 흔히 ‘주산 제사’라고 부른다.
[연원 및 변천]
해평리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자연마을로서, 흔히 ‘해평큰마’라고 부르고 있다. 큰마마을에는 해평김씨 시조 김훤술(金萱術)의 석상을 모신 시중사가 있다. 조선시대부터는 전주최씨가 모여 사는 동성마을이었으며, 동제는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현재 마을 제사는 보천사 스님이 담당하고 있다. 큰마마을도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부터 1970년까지만 해도 마을에서 제관을 선출하고,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치는 등 까다로운 절차에 따라서 제사를 지냈다.
1970년 중반 새마을운동을 할 무렵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미신으로 생각하여 폐지하였다. 2~3년 후에 마을에서 젊은이가 죽는 일이 자꾸 발생하자 주민들이 동제를 폐지해서 그렇다고 생각하여 다시 지내기로 하였다. 마을 제사는 예전과 같이 주민들이 직접 지내지 않고 사찰에 부탁하여 지내는 것으로 하고, 비용은 대략 30만 원으로 책정하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신당은 마을 뒷산의 소나무 네 그루이다. 이 당목을 해치거나 꺾은 사람은 죽는다는 믿음이 있을 정도로 영험하였다고 한다. 그런 영험함 때문에 일제강점기에 주변의 소나무들은 모두 벌목을 당하였지만 당목은 나뭇가지 하나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절차]
마을 제사는 현재 보천사의 승려가 대신 지내주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금기는 없다. 외부인들의 출입금지도 없다. 마을에서는 사찰의 승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30만원을 지불한다. 제일은 원래 음력 정월 14일 자정이었으나, 보천사여승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하여 시간을 오후 8시로 앞당겼다. 제의는 마을제당에서 불교식으로 지낸다. 주지에 의하면, 사찰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방식으로 지낸다고 한다.
[현황]
보천사 승려가 제사를 지내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제삿날 교통사고를 당하고도 무사하여 다시 지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정성껏 제사를 지낸 뒤에 제물 일체를 경로당으로 보내면 예전 방식대로 똑같이 나누어서 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