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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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時代水産業-中心地古群山群島漁箭漁業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
시대 | 조선/조선,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임유미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지역의 어전 어업.
[개설]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군도는 우리 민족의 전통 어로 방법인 어전 어법의 중심지였다. 어전(漁箭)이란 일명 정치 어업(定置漁業)이라고도 불리는 전통 어로 방법으로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함정에 빠뜨려 포획하는 방법의 어로 형태를 말한다.
어전은 우리나라의 서해안과 남해안 지역에서 유독 발전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들 지역이 어전의 필수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필수 조건이란 이 지역이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지역이라는 점과, 넓은 갯벌이 형성되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 지역은 반도형 지형의 굴곡 해안선이 형성되어 있어 어전을 행하는데 최상의 주변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어전의 발생 조건은 우리나라의 중부 서해안에 자리한 고군산군도 지역의 자연 조건과도 일치하여 이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어전을 해왔는데 고군산군도에서 행해진 어전은 그 방법과 종류가 독특하여 우리나라 서해안 어전의 한 지류를 형성하는데 부족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고군산군도 어전의 기원과 변천]
어전(漁箭)은 기존에 정치 어업(定置漁業)이라고 불리던 어업의 전통적 표현 방법으로 과거에는 어전(漁箭), 어량(魚梁), 어기(漁基), 어장(魚腸), 방렴(防簾) 등의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일반적으로 강변이나 해안에 고정된 구조물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는 어법을 말한다. 어전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의 주기적 변화인 밀물과 썰물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즉 물이 들어 왔을 때 함께 들어온 물고기를 특정한 모양의 구조물을 이용하여 함정에 빠뜨림으로써 물고기를 잡는 것이다.
고군산군도의 어전에 관한 기원을 살펴보면 이 지역의 자연 환경은 육지의 토사 유입이 많아 수심이 얕고 조석간만의 차가 심하여 간조 시에는 광대한 갯벌 지대가 형성되며, 해안선이 복잡하고 도서, 하천 등이 많으므로 각종 수산 동·식물의 은신처가 되어 많은 어족의 산란장과 서식 장으로 오랜 옛날부터 원시적 어전 어업이 행해졌던 곳이다.
고군산군도 어전 어업에 대한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호남에 어살이 3분되어 있으니 울타리 길이가 600파에서 최소 300파에 이르며 어살에 부과하는 세율을 보면 고군산군도의 세율이 가장 높고, 위도가 그 다음, 영광, 무안, 만경이 그 다음, 무장, 홍덕, 고부, 옥구가 그 다음’ 이라고 하여 고군산군도의 어전이 가장 규모가 크고 옥구 지역 또한 어전을 이용한 어로 작업이 활발했던 곳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이후 일제 강점기에 이르면 우리의 전통적인 어법인 주목망(柱木網), 홍선망(引船網), 어전, 중선망(中船網) 등은 꾸준히 행해졌지만 조선 총독부에서 우리나라 어업 생산량 증대 방안의 일환으로 일본에서 유입된 어구 어법의 보급을 꾸준하게 추진한 결과 점진적으로 일본의 어로 방법이 보편화 되게 된다.
일제 강점기 어전의 현황을 보면 조선 총독부에서 조사한 어세(漁稅) 납부 실적으로 그 상황을 알 수 있다. 개항 이후 전라, 충청 양 지역의 경우를 통해 보면, 충청도 지역보다는 전라도 지역의 어세(漁稅)[箭稅, 薕稅, 網稅, 漁場稅 등 포함]가 월등하고 그 중에서도 고군산군도 인접 지역의 어세가 비교적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해세의 규모는 삼남 지방(三南地方) 중에서 충청도가 가장 적었으며, 전라도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그 해세의 규모는 『균역 해세』 실시 당시 즉 140년 전에 비해서는 감소된 것이었으니 고군산군도 지역에서 어전의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다.
이처럼 호황을 누리던 서해안의 수산업과 어전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전승되지만 해방과 함께 선박 어법의 발달과 어족 자원의 부족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여 70년대에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고군산군도 지역의 어전 현황]
고군산군도의 어전은 안타깝게도 현재는 모두 사라져 어전을 했던 도서 지역 주민들의 기억을 더듬어 현장 조사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어전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다행이도 1970년대 이전 어전의 형태와 운영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다수 현존하여 다행이도 사라질 뻔한 고군산 지역의 전통 어로 방법을 조사할 수 있었고 이 글에서는 그 조사를 정리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1) 개야도(開夜島)
군산에서 22㎞ 거리에 위치한 개야도는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오천군 하남면에 속해있던 섬이었으나 1914년부터 옥구군에 편입된 섬으로 주민들 중에는 아직도 군산 보다는 충청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곳이다. 때문에 이곳에서는 충청도 도서 지역의 특징인 독살과 살을 많이 했다고 한다. 개야도에서는 독살을 주벅이라 칭했으며 나무와 그물을 이용하는 주목망은 개메기로 어살 작은 대나무로 하는 어살은 궁발이라 불렀으며 규모가 큰 어살를 살이라 불렀다. 마을 어른들에 따르면 옛날에는 청어둔벙이라 하여 독살이 여러 개가 있었다고 하며[박창연, 75세] 또한 독살과 관련하여 옛 어른들은 ‘옛날 바람이 불면 독살에 고기는 안 들어가고 돌 만 넘어가고 악섬에서는 왈왈하고 궁구섬에서는 궁궁하며 내 돈 몇 십 만냥 누가 주냐’ 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① 주벅[독살] : 개야도에서 독살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해왔는데 독살마다 주인이 각기 있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독살은 흰독살이라는 곳의 큰 주벅[독살]인데 이게 언젠가 무너져서 주인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해방되던 해까지 고기를 잡았으나 어획량이 감소하고 소득이 줄자 독살의 보수를 소홀히 하여 중단되었다고 한다. 개야도의 독살중 흰독살에 자리한 큰 규모의 독살은 이대진씨 집안에서 조상 대대로 운영하였다. 물때에 맞추어 한 달에 10일정도 물을 보는데[물고기 수거] 그럴 경우 한 달에 20회 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대진씨 독살은 중앙에 대나무로 만든 굴뚝[임통]이 있어 그곳에 어류가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대진씨 독살 북쪽으로 정안철씨 집안의 독살이 있는데 규모는 적은 편이며 해방 후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 독살의 모습은 갯벌에 둥근 초승달 모양으로 돌를 쌓는 일반적인 모습인데 학교 뒤 안악섬 독살은 해변에 자리하고 있다.
② 궁발[어살] : 1m 정도 되는 대나무를 잘게 쪼게어 만든 궁발은 작은 규모의 어살인데 대나무와 대나무 사이를 촘촘히 엮어야 했으므로 제작 과정이 어려웠으나 소들은 크지 않아 소일거리를 찾는 노인들이 많이 하는 어로 행위로 모습은 독할과 유사했다고 한다. 궁발의 경우 서들녘 근처 갯벌을 터전으로 장씨와 신영덕씨 집안에서 주로 했는데 꽃게를 많이 잡았으며 50여년 전에 중단되었다.
③ 개메기[주목망] : 궁발과 비슷하지만 궁발이 대나무로 만들어 제작이 어려웠기에 기둥나무에 그물을 치는 개메기가 이용되었다. 높이는 궁발보다 높았으나 설치가 간단하여 한동안 사용되었음
④ 살 : 개야도의 살은 임현택씨 집안에서 운영했는데 자재는 큰 왕대나무를 이용하며 모습이 궁발의 큰 모습인데 높이가 3m 정도 되며 모습은 초승달 모습의 독살과 달리 해안선과 평행하게 십일 자로 설치한 후 한쪽 끝을 둥글게 휘어 감아 방을 만들어 고기가 출구를 찾다 방에 들어가면 못나오는 형태이다. 개야도의 정치망 중 가장 규모가 큰 형태인 살은 조기 철에는 엄청난 양을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50여 년 전에 살아졌다.
(2) 선유도(仙遊島)
선유도는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으로 신석기 시대 이래로 사람이 거주하며 어로 작업을 했던 곳인데 전통적 어로 방법이 주로 섬에서 멀리 가지 못하고 섬 주변에서 어살과 주목망 등의 정치어업을 하던 형태였던 것으로 보아 이곳에서도 정치 어업이 오랜 전통을 이어왔을 것으로 보이는데 조선시대 균역청 사목 해세 제4 에 따르면 고군산 지역의 어살에 대한 해세 징수가 경기도나 충청도에 비하여 컸던 것으로 나오고 있어 이 지역에서의 정치망 어업이 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고군산의 경우 대전(大箭) 1등에 70냥을 징수했고 소소전(小小箭)에 4냥 내지 3냥을 징수하여 살의 규모의 차이가 켰던 것으로 보이고 특히 대전(大箭)의 경우 세금이 이웃 위도나 경기도의 2배 내지 4배 정도 많아 어획량이 전국적으로도 컸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선유도의 경우 현재는 모두 살아지고 선유 2구의 진말 앞 갯벌에서 대나무로 만든 살이 있었다는 증언만 들을 수 있다.
(3) 비응도(飛應島)
섬의 모습이 매가 나르는 모습이라 하여 비응도 혹은 비응이라 하였는데 군산에서 뱃길로 11해리 거리였으나 지금은 새만금 사업의 군산 쪽 기점이 되어 육지와 연결되었고 섬의 모습도 상당 부분 훼손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순 없다. 그러나 이곳에는 동쪽으로는 모래 해변이 있고 서쪽으로는 갯벌이 발달하여 정치망 어업의 적지였다. 때문에 어살과 독살 등이 있었는데 독살은 최근까지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군산 2국가 산업 단지 공사로 갯벌이 매립되어 지금은 사라졌다.
(4) 비안도(飛雁島)
섬의 지형이 날아가는 기러기와 비슷하다하여 비안도라 부른다. 군산항으로부터 약 83㎞ 정도 거리에 있다. 본래 전라남도 지도군에 소속된 곳으로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9㎞ 떨어진 부안 앞 바다의 섬으로 이곳에서는 이 고장 출신인 정복동 씨가 부안 고사포에서 그물로 만든 어살을 본 후 해방 직후에 비안도에 들어와 서대목이라는 외진 곳에 정착하여 처남되는 박연태 씨와 함께 독살을 만들었다. 정복동 씨가 독살을 만든 이유는 물고기는 돌 옆에 사는 습성이 있어 그물 어망과 달리 독살은 매일 고기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총 2개가 만들어져 현재 사용은 않지만 2개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도 공동적으로 독살이라 부르며 독살의 중앙에 자리한 임통을 그냥 둥벙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곳의 독살은 20여년 전 부터 어족 감수로 중단되었다.
(5) 말도
말도는 고군산군도의 최북서단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에는 끝점 혹은 끝섬이라고 불리웠다. 말도는 용이 하늘에 오르려다 주저앉은 형태인데 용의 머리에 등대를 세운 모습이다.
말도 인근 해역은 수심이 깊어 바다 낚시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데 갯벌이 적어 일반 어살이나 독살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주목망은 많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6) 장자도(壯子島)
가제미, 장자도, 장자 등으로 불리우는 장자도는 섬의 모습이 가제미 또는 장자[부자]가 살았으므로 장자도라 불렀다고 하는데 선유도와 이웃하여 있으며 섬에 돌이 많아 예부터 전통 정치망 어업이 발달한 곳인데 지금은 그 흔적이 없고 최근에 했던 주목망의 흔적만 남아 있다.
(7) 두리도(斗里島)
두리도는 고군산군도 중 가장 남쪽에 자리한 섬으로 비안도의 북동쪽 1해리 지점에 있다. 이 섬은 비안도에서 1980년 12월 행정 구역 개편으로 분리되었는데 섬의 모습이 옛날 곡식을 헤아리던 말[斗]의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두리도라 칭했다고 한다. 이 곳 주민들은 주로 김 양식과 쭈꾸미, 장대 등을 잡아 생활하는데 봄이 되면 새우 잡이로 분주하게 보내지만 새만금 사업으로 요즘에는 새우가 거의 안 나온다고 한다.
이 섬에서는 전라북도 부안에서 온 사람이 동네 앞 넓은 갯벌에 어살을 설치하여 운영하였는데 당시의 어살은 V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높이 3m 정도 되는 대발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대발은 20년전 쯤 중단되고 2-3년후 같은 부안 사람이 같은 장소에 나무 말둑에 그물을 이용하는 V모양의 어살을 다시 만들었으나 10년쯤 전에 그만 두었다고 한다.
(8) 신시도(新侍島)
신시도는 군산에서 서남쪽으로 22해리 거리에 위치한 섬이다. 지대가 깊은 지풍금, 짚은금, 심리라 불렀는데 인근에 선유도와 무녀도가 있어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섬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정치망 어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현지인들은 대나무 살로 만든 어살을 만들어 이용했음은 기억하고 있다. 신시도의 살바탕이라는 갯벌에 자리한 어살은 두 곳이었는데 그 중 규모가 큰 곳은 고진곤씨 아버지가 운영한 곳으로 높이가 3m 정도 되는 대나무발로 만든 7자를 뒤집어 놓은 모습이었다. 개야도의 살과 유사한 모습이었는데 55년 전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또 한 곳은 김일권씨 할아버지가 소일거리 삼아 만든 어살로 높이가 1m 정도 되었으며 망둥어 등을 잡았다고 한다. 재질은 대발로 만들었으며 반달 모양이었는데 50년 전에 중단하였다고 한다. 이곳 어살에서는 꽁치, 망둥어, 전어, 조기 등이 잡혔다. 이 밖에도 신시도에는 주벅망[주목망]을 했다고 하는데 장소는 오늘날 새만금 방조제 인근의 백찌미 주변으로, 70년 전에 중단되어 확인이 불가하다고 한다.
[결론]
고군산군도 인근 지역 어전 어업의 종류와 현황을 보면 고군산군도의 섬 지역의 경우 개야도, 선유도, 신시도, 선유도, 장자도, 비안도, 두리도, 말도 등 8개 도서에서 여러 종류의 어전이 발견되었다. 그중 독살이 발견된 섬은 개야도와 비안도, 내초도 등 3개 섬이었고 나머지 섬들은 주로 어살 및 주목망을 이용 하였다. 이 지역에서 이용된 어전은 독살과 어살 그리고 주목망과 개막이 등을 꼽을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형 어전인 어살과 주목망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고군산군도 인근 지역 어전의 설치 환경을 확인해보면 서해안 지역 중 군산 고군산군도의 어전은 일반인의 생각보다 크고 대규모로 행해졌으며 어전의 명칭 및 형태의 지역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남을 확인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