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6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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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屯德里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둔덕리 |
시대 | 고대/초기 국가 시대,조선/조선 |
집필자 | 유영춘 |
조성|건립 시기/일시 | 4세기 중엽 - 둔덕리 유적 형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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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3년 - 둔덕리 유적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 실시 |
현 소재지 | 둔덕리 유적 -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둔덕리 황새머리산 서쪽 능선 하단부 |
성격 | 유적 |
[정의]
전라북도 군산시 성산면 둔덕리 둔덕 마을 뒷산에 자리한 초기 국가 및 조선 시대 유적
[개설]
둔덕리 유적은 군장(Ⅰ) 공업용 수도사업 송수관로 부지 공사 이전에 실시된 시·발굴조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둔덕리 유적에서는 초기 국가 시대 주거지 1기, 주구묘 1기, 토광묘 1기, 조선 시대 민묘 2기가 조사되었다.
[건립 경위]
둔덕리 유적의 건립 경위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발굴 조사를 통해 유적의 시기를 추정해볼 수 있다.
[위치]
둔덕리 유적은 발굴 조사 이전의 지표 조사에서 군산 둔덕리 유물 산포지 A로 명명되던 곳으로 둔덕 마을에서 북쪽으로 300m 떨어진 황새머리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다.
[형태]
남서쪽 기슭 중단부에서 조사된 초기 국가 시대 주거지는 대부분이 유실되고 바닥 부분만 보존되어 있다. 규모는 동서 길이 380㎝, 서벽 너비 200㎝로, 잔존 깊이는 10㎝내외이다.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방형으로 남벽에 소토가 남아있어 아궁이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내부에서는 우각형 파수가 달린 시루, 문양이 시문되지 않은 적갈색 연질 토기편이 주종을 이루고 동체부에 격자문이 타날된 것도 있다.
초기 국가 시대 토광묘는 자연 생토층을 말각장 방형으로 파내어 토광을 마련하였다. 규모는 길이 310m 내외, 너비 94㎝, 깊이 17~30㎝로 산 능선과 평행하게 장축 방향을 두었으며 목관묘로 추정된다. 토광의 중앙에서는 1점의 호가 출토되었다. 이 토광묘는 신관동 1호분과 축조 시기가 비슷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시기는 4세기 중엽전후이다.
정상부에서 조사된 주구묘는 매장 주체부가 확인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유실되었으나 서쪽과 남쪽에 주구의 흔적이 일부 남아있었다. 주구묘의 외부 길이는 1540㎝, 내부 길이 1280㎝, 잔존 최대 너비는 980㎝이며, 주구의 너비는 120~350㎝ 내외, 최대 깊이는 65㎝이다. 주구의 형태는 장방형으로 추정되며 주구의 내부와 그 바닥면에서는 격자문이 타날된 적갈색 연질 토기편이 수습되었다. 이 연질 토기편은 대야면 산월리 주구묘에서 수습된 것과 상통하는 것으로 시기가 4세기 중엽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능선의 정상부와 남서쪽 기슭에서 조사된 토광묘는 평면 형태가 세장방형으로 인골이 일부 남아있다. 정상부에서 조사된 토광묘의 규모는 길이 190㎝, 너비 50㎝, 잔존 깊이 118㎝내외이고 남서쪽 기슭에서 조사된 토광묘는 길이 210㎝, 너비 30~47㎝, 깊이 38~88㎝내외이다. 토광의 내부에서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이 토광묘는 성산면 창오리와 도암리에서 조사된 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조선 후기의 토광묘와 속성이 유사하다.
[현황]
현재는 송수관로 공사가 완료되어 둔덕리 유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발굴 조사 결과 초기 국가 시대 주거지, 주구묘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적의 주변에는 둔덕리 조개더미와 같은 초기 국가 시대로 추정되는 유적이 자리하는데 이 유적들과 함께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이 지역의 초기 국가 시대 문화를 밝히는데 값진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