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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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杜陵杜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지 | 만경 -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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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금광리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금광리 |
성씨 시조 | 두경녕(杜慶寧) |
입향 시조 | 두승손(杜承孫)|두장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옥구현]에 세거한 성씨.
[연원]
두릉두씨는 본래 중국의 거성(巨姓)이었으며, 명망있는 씨족이었다. 송나라 때 병부 상서를 지낸 두경령(杜慶寧)이 황제에게 직언을 하고 극간(極諫)을 하여 다른 관리들로부터 시기와 모함을 받게 되자, 두 명의 아들 중서사인 두지건(杜之建)과 우습유 두지방(杜之逄)을 대동하고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고려 궁지현(宮池縣)에 이르니, 그 곳이 지금의 만경이다. 고려 조정에서는 두경령에게 만경현의 일부를 식읍으로 주고 그를 두릉군(杜陵君)에 봉군하였다.
[입향 경위]
두릉두씨는 15세기에 병마우후를 지낸 두승손[시조 두경령의 11세손]이 만경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후손들이 회현면 금광리와 옥산면 당북리, 금성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현황]
옥구에 세거한 두릉두씨 입향조는 두릉두씨 시조 두경령(杜慶寧)의 11세손이며, 조선 태종 조에 병마우후를 지낸 두승손(杜承孫)이다. 두승손의 장자 두세준(杜世俊)은 효행으로 이름을 떨쳐 그 사실이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중종 연간에 조정에서 정려를 세웠는데, 두세준의 정려는 군산 지역의 정려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두승손의 현손인 두정란(杜廷蘭)과 두정협(杜廷莢)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무관으로서 일본군에 맞서 충청도 금산에서 의병장 조헌 등의 의병 등과 합세하여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이들을 사후에 선무원종공신에 책봉하였다. 두승손의 후손 중에 사마시 합격자는 두시재(杜詩在)와 두철수(杜喆秀)인데, 두시재는 1873년(고종 10) 식년시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두철수는 1885년(고종 22) 식년시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두승손의 후손들은 15세기에 만경에서 옥구로 입거한 이후 회현면 금광리와 옥산면 당북리, 금성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해 오면서, 국가의 문무 관료 및 충신과 공신, 그리고 효자와 열녀를 여러 명 배출한, 군산[조선 시대 옥구현]의 5대 성씨 중에 하나이다. 5대 성씨는 제주 고씨, 두릉두씨, 남평 문씨, 담양 전씨, 진주 강씨이다. 한편 옥구에 세거한 두릉두씨 중에는 두승손의 후손들이 아닌 두장의 후손들도 있으나, 그 수는 두승손의 후손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두장은 두승손의 숙부이다. 현재 군산 지역에 거주하는 두릉두씨 현황에 대해서는 조사된 사례가 없어 파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