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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 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0870
한자 世居姓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집필자 김두헌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조선 시대 옥구현임피현]에 세거한 성씨들.

[개설]

조선 시대 옥구현임피현 지역에 세거하여 온 성씨들 중에 흔히 대성이라고 불리는 성씨로 옥구현은 고씨, 두씨, 문씨, 전씨, 강씨이고, 임피현은 심씨, 황씨, 채씨, 이씨, 한씨, 조씨가 있다. 각 성씨들 중에 제주 고씨는 고려 중엽인 12세기 중엽에 개경에서 옥구로 이주하여 세거하여 왔고, 나머지 성씨들은 고려 말 조선 초부터 16세기 초까지의 시기에 이주하여 세거하여 왔다. 각 성씨들이 집성촌을 이룬 시기는 성씨마다 다른데, 대부분 조선 중엽으로 추정된다. 또한 15세기 말이나 16세기, 또는 17세기나 18세기에 옥구현이나 임피현으로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성씨들도 적지 않게 있다.

[내용]

현재 조선 시대 옥구현임피현에 적어도 2백년 이전 무렵에 이주하여 온 각 성씨들의 파(派)는 현재 40여 개 파(派)가 확인되었다. 옥구현임피현에 모두 거주한 성관(姓貫)이라고 하더라도 각각 이주한 시기가 다른 성씨들도 있다. 이들은 같은 성씨라도 입향조를 달리하고 있으므로, 서로 다른 파(派)로 구분하였다. 여기에서의 각 파(派)는 옥구나 임피로 최초로 이주하여 온 입향조가 같은 집단을 의미한다. 옥구와 임피로 이주하여 온 이후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서 다시 여러 개로 갈라진 파(派)가 아니다.

[옥구 지역의 세거 성씨]

먼저 조선 시대 옥구현 지역으로 이주하여 후손들이 세거한 성씨들이다.

18세기 전반 무렵에 장사랑(將仕郞)을 지낸 함여천(咸如天)이 김제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산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강릉 함씨(江陵咸氏) 옥구(沃溝) 옥산(玉山)파이다.

15세기 말 경에 병사(兵使)를 지낸 김윤신(金允信)옥구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산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개성 김씨(開城金氏) 옥구(沃溝) 쌍봉리파(雙鳳里派)이다.

15세기 중엽에 증직(贈職)으로 호조 참의를 수여받은 김생수(金生水)회현면 학당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경주 김씨(慶州金氏) 참의공파(參議公派)이다.

16세기 전반 경에 이몽원(李夢黿)이 파주에서 옥구현(沃溝縣)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일대에 집성촌을 형성하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경주 이씨(慶州李氏) 상서공파(尙書公派)이다.

16세기 중반에 김덕양(金德良)이 논산에서 처가(妻家)[진주강씨]가 있는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광산 김씨(光山金氏) 경력공파(經歷公派)이다.

15세기 경에 반잠(潘岑), 반서룡(潘瑞龍), 반서린(潘瑞麟), 반희(潘凞) 등이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광주 반씨(光州潘氏)이다.

15세기 중반에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자진(金自珍)이 계유정란을 당하여 옥구현 원당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일대에 집성촌을 형성하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김해 김씨(金海金氏) 장사군파(長沙君派)이다.

15세기에 옥구현 세장리에 문헌(文獻)이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남평 문씨(南平文氏) 시중공파(侍中公派)이다.

15세기 중엽에 사헌부(司憲府) 장령(掌令)을 지낸 전윤평(田允平)이 한양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읍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담양 전씨(潭陽田氏) 참판공파(參判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이다.

16세기 후반에 서경무(徐景茂)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읍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대구 서씨(大丘徐氏)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이다.

태종 조에 병마우후(兵馬虞候)를 지낸 두승손(杜承孫)이 만경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회현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옥구현에 거주한 두릉 두씨(杜陵杜氏)이다.

박세현(朴世賢)이 15세기 말 경에 한양에서 상주로 이주하였다가 다시 옥구현 석화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밀양 박씨(密陽朴氏) 정재공파(貞齋公派)파이다.

김중견(金仲堅)이 16세기 전반에 정읍에서 처가(妻家)가 있는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선산 김씨(善山金氏) 백암선생파(白巖先生派)이다.

15세기 후반 경에 김윤경(金允勁)이 고산에서 옥구현(沃溝縣)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안동 김씨(安東金氏) 문온공파(文溫公派)이다.

16세기 중엽에 송유익(宋惟翊)의 옥구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읍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여산 송씨(礪山宋氏) 가정공파(正嘉公派)이다.

15세기에 장천붕(張天鵬)이 적성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인동 장씨(仁同張氏) 황상파(凰顙派)이다.

15세기 초에 장흥 오씨(長興吳氏)옥구현에 이주하여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장흥 오씨(長興吳氏) 한성 판윤공파(漢城判尹公派)이다.

12세기 중엽에 고돈겸(高惇謙)이 중앙의 고위 관리로 있다가 오식도로 좌천된 것이 계기가 되어 옥구현에 거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제주 고씨(濟州高氏) 문충공파(文忠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와 사직공파(司直公派)이다.

15세기에 위사공신이며 전라어사(全羅御史)를 지낸 강원전(姜元鐫)옥구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회현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진주 강씨(晉州姜氏) 호부사공파(戶部事公派)이다.

16세기 중반 무렵에 지성해(池成海)가 만경에서 옥구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옥구현 일대에 세거한 충주 지씨(忠州池氏) 가문이다.

16세기 중엽에 신겸(申謙)이 옥구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 회현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평산 신씨(平山申氏) 주부공파(主簿公派)이다.

16세기 중엽에 임덕온(林德溫)옥구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옥구읍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평택 임씨(平澤林氏) 평성 부원군파(平城府院君派)이다.

[임피 지역의 세거 성씨]

조선 시대 임피현 지역에 이주한 성씨들이다. 16세기에 김맹의(金孟義)임피현 나포면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나포면 옥곤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개성 김씨(開城金氏) 옥곤리파(玉崑里派)이다.

16세기 전반에 천안 군수를 지낸 김유성(金有聲)이 해남에서 해배되어 서울로 올라가던 중에 임피현에 거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김해 김씨(金海金氏) 도사공파(都事公派)이다.

고려 말에 삼중대광 우정승을 지낸 양의생(梁宜生)이 옥구현 풍촌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남원 양씨(南原梁氏) 이조판서공파(吏曹判書公派)이다.

15세기 말 16세기 초에 문희(文熙)임피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서황동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남평 문씨(南平文氏) 임피파(臨陂派)이다.

15세기 중엽에 노윤적(盧允迪)이 안동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임피현에 세거한 안동 노씨(安東盧氏) 가문이다.

15세기에 최근운(崔墐雲)이 경기도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하여 개정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임피현에 세거한 경주 최씨(慶州崔氏) 가문이다.

15세기 말-16세기 초에 고산에서 황준(黃濬)이 처가(妻家)가 있는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성산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우주 황씨(紆州黃氏) 참판공파(參判公派)이다.

16세기 중반 경에 원호(元昊)임피현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원주 원씨(原州元氏) 삼사좌윤공파(三司左尹公派)이다.

15세기 말 경에 이수인(李守仁)이 예산에서 임피현 개정 운회리에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개정 운회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전의 이씨(全義李氏) 판서공파(判書公派)이다.

17세기 말 18세기 초 무렵에 유서정(柳瑞井)이 전주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개정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전주 유씨(全州柳氏) 호은공파(壺隱公派)이다.

16세기 중엽에 이화(李華)가 전주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중공파(侍中公派) 문정공파(文正公派) 성동취남파(城東鷲南派)이다.

16세기 무렵 이계윤(李戒胤)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전주 이씨(全州李氏) 시중공파(侍中公派) 문정공파(文正公派) 임피(臨陂) 남산파(南山派)이다.

15세기 무렵에 이보연(李保珚)이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한 이들이 전주 이씨(全州李氏) 황강공파(黃崗公派)이다.

16세기에 이맹인(李孟仁)이 기묘사화로 한양(漢陽)에서 임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전주 이씨(全州李氏) 익안대군파(益安大君派)이다.

16세기 중반 성수번(成秀蕃)이 임피현으로 입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창녕 성씨(昌寧成氏) 좌랑공파(佐郞公派)이다.

심숙(沈淑)이 16세기 말 17세기 초에 수원에서 임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청송 심씨(靑松沈氏) 양지공파(陽智公派)이다.

정랑공(正郞公) 한질의 손자 한우(韓遇)가 16세기 전반에 연산군의 폐정으로 인하여 양주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대야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청주 한씨(淸州韓氏) 정랑공파(正郞公派)이다.

최자호(崔自浩)와 동생 최자숙(崔自淑)이 15세기 중반 경에 고산(高山)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면서수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각각 임피 술산파(臨陂戌山派)와 임피 현령파(臨陂縣令派)이다.

채양생(蔡陽生)이 고려 멸망의 한 품고 손자 채효손(蔡孝孫)과 재당질 채지생(蔡智生)을 대동하고 임피현 성산면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면성산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평강 채씨(平康蔡氏) 소감공파(少監公派)와 목사공파(牧使公派)이다.

조침(趙琛)이 16세기 전반에 김제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성산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는데 이들이 평산 조씨(平山趙氏) 충정공파(忠貞公派)이다.

곽손(郭遜)이 17세기 전반에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면서 임피에 거주하는 포천 곽씨(抱川郭氏) 가문을 형성하였다.

임홍(任鴻)이 16세기 후반에 함열에서 임피현 대야 오산리로 이주한 이후 후손들이 임피현 대야면 일대에 세거하면서 풍천 임씨(豊川任氏) 낙안공파(樂安公派)를 형성하였다.

이기주(李箕疇)가 17세기 말 18세기 초에 한산에서 임피현으로 이주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임피현 성산면 일대에 세거하면서 한산 이씨(韓山李氏) 직강공파(直長公派)를 형성하였다.

[현황]

현재 군산 지역의 성씨와 인구 분포의 대략적인 현황은 조사된 통계 자료가 없어 알기 어렵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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