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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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山申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옥도면|옥서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 1537년 - 신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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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 1578년 - 신겸 사망 |
묘소|세장지 | 대위산 - 전라북도 군산시 회현면 고사리 대위리 대위산 |
성씨 시조 | 신숭겸(申崇謙) |
입향 시조 | 신겸(申謙) |
[정의]
조선 시대 군산[옛 옥구현] 지역에 세거한 성씨.
[개설]
평산신씨(平山申氏) 시조 신숭겸(申崇謙)의 21세손인 신겸(申謙)이 옥구(沃溝)에서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회현면 학당리, 고사리, 금광리, 옥도면 연도리, 개야도리, 서수면 마룡리, 옥서면 선연리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여 왔다. 이들은 자신들을 평산신씨 제저공파 주부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연원]
평산신씨(平山申氏) 시조 신숭겸(申崇謙)은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과 싸우다가 적에게 포위당하여 위급하게 되었을 때, 신숭겸이 김낙(金樂)과 함께 왕을 대신하여 힘껏 싸우다 전사하였고, 왕건은 겨우 단신으로 적진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이후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되었고, 장절(壯節)이라는 시호(諡號)를 받았다. 신숭겸의 15세손 제정공(齊靖公) 신효창(申孝昌)은 조선 태종 조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호조 판서를 지냈으며 청백리로 뽑혔다.
[입향 경위]
평산신씨(平山申氏) 시조 신숭겸(申崇謙)의 21세손이며, 제정공 신효창의 7세손인 신겸(申謙)이 16세기 중엽에 군산시[옛 옥구현] 회현면으로 이주하였는데, 이후 후손들이 옥구현에 터를 잡고 세거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을 평산신씨 제정공파 주부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신겸의 종조 부사공(府使公) 신건(申健)이 옥구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옥구로 데리고 왔는데, 옥구에 세거하고 있었던 제주 고씨 문충공파 참의공파 출신 고사무(高士武)의 딸과 혼인하게 되어, 그대로 옥구현에 머물게 되었다. 관직으로 주부를 지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옥구현 회현면 일대에서 세거하였는데, 이들은 자신들을 평산신씨 제정공파 주부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현황]
1990년에 발간된 『옥구 군지(沃溝郡誌)』에 의하면, 당시 회현면 고사리 척동 마을에 평산신씨 제정공파가 11가구 49명, 금광리 일대에 13가구 62명[금광 마을 4가구 19명, 옥흥 마을 4가구 20명, 옥성 마을 5가구 23명], 학당리 일대에 24가구 107명[구학당 마을 10가구 43명, 원학당 마을 14가구 64명], 옥도면 연도리 일대에 10가구 47명, 개야도리에 13가구 62명, 서수면 마룡리 일대에 17가구 72명, 옥서면 선연리 일대에 20가구 71명이 각각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고 한다. 군산에 거주한 평산신씨의 현재 인구 현황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