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7008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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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義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군산시 임피면|성산면|개정면|옥서면 |
집필자 | 김두헌 |
입향 시기/일시 | 15세기 말 무렵 - 이수인(李守仁) 예산에서 임피로 이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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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집성지 | 운회리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
묘소|세장지 | 운회리 -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
성씨 시조 | 이도(李棹) |
입향 시조 | 이수인(李守仁) |
[정의]
조선 시대 군산 지역[옛 임피현]에 세거한 성씨.
[개설]
전의이씨(全義 李氏) 전서공파 후손들이 15세기 말 경에 어머니인 인동 장씨와 아들 이수인(李守仁)이 예산에서 임피로 들어와 거주한 이후로 군산시 개정면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였다. ‘전서공’은 이수인의 고조 이화이다.
[연원]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을 세운 공로로 삼한 개국 익찬 2등 공신에 녹훈(錄勳)되었고, 전산후(全山候)에 봉해졌으며, 시호로 성절(聖節)을 수여 받았다. 왕건이 남쪽 견훤의 군대를 공격하기 위해 금강에 이르렀지만 강물이 범람하여 건너지 못하고 있을 때, 강을 건너는 계책을 제시하여 도(棹)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입향 경위]
전의이씨(全義李氏) 시조 이도(李棹)의 12세손이고, 전서공 이화(李華)의 현손인 이수인(李守仁)이 15세기 말 경에 충청남도 예산에서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조선 시대 임피현]에 입거하였다. 이수인의 부(父)의 묘소는 충청도 예산에 있지만, 모(母)의 묘소는 이수인과 같이 운회리에 있다. 곧, 임피에 세거한 전의이씨 전서공파의 실질적인 입향조는 이수인의 모(母) 인동 장씨이다. 인동 장씨가 자신의 아들 이수인을 대동하고 예산에서 임피로 입거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는데, 후손들도 그렇게 여기고 있다. 인동 장씨가 임피에 입거한 시기는 이수인의 당질 이식(李湜)의 생원시 합격 연도[1447년 식년시 생원시 합격]와 문과 급제 연도[1472년 춘당대시 문과 급제]로 보아, 그리고 조카 이사검의 진사시 합격 연도[1501년 식년시 진사시 합격]로 보아, 15세기 말 경으로 추정된다. 이수인은 남해 현감을 지냈다.
한편 임피에 세거한 다른 전의이씨 전서공파가 있다. 이들의 임피 입향조는 16세기 전반 경에 연일에서 임피로 입거한 이기형(李祺亨)[1582~?]이다. 이수인과 이기형의 가계는 전서공 아들 대에서 갈라졌다.
[현황]
이수인이 임피에 입거한 이후 이수인의 후손들이 임피현, 현재의 전라북도 군산시 개정면 운회리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며 세전하여 살아왔는데, 후손들은 자신들을 전의이씨 전서공파라고 부르고 있다. 군산에 거주한 전의이씨의 현재 인구 현황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한 인구를 알 수 없다.